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2.16/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어제는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엄마가 동생에게 면사포를 씌워주듯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올라오는 길은 시속 20킬로로 굴러왔다. 바람이 거세지자 눈이 영화처럼 차 쪽으로 날아오는데 마치 애니메이션을 찍는 기분이었다. 엄마도 정말 기쁘셨던 모양이다. 중부를 모두 눈으로 덮으신 걸 보면 말이다.


동생은 어제 보석처럼 빛나고 꽃처럼 발화한 모습이 참 어여뻤다.

우리 막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근심은 사라지고 이날의 경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 행복했다.

동생과 함께~♡

평생에 한 번이지만 아빠는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울며 떼를 써도 나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 번을 평생 못 들어 봤는데.ㅎㅎ 동생에게라도 따뜻한 축하를 해주셔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은 오늘 신혼여행을 떠나며 비행기를 탔다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오고 가는 다정한 마음이 사람을 얼마나 부드럽게 하고 치유하는가. 아빠가 진작 이런 삶을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이에 문제는 일단 잘 해결된 듯 보인다. 나는 금요일 아침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담임선생님.
아이 걱정에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선생님 제가 말씀드린 상대편 아이들과 상담하실 때 이 말을 꼭 좀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피해자 아이 부모님도 이사실을 다 알고 계신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만약 보복이나 같은 일이 반복될 시 다음번에는 피해자 아이 부모님들이 너희 부모님들과 만나 직접 해결할 거라고 하셨다.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제아들 근처에도 얼씬도 말고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요'

그 아이들은 부인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상대편 부모님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을 꼭 좀 인지 시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는 이유 없이 저희 아이를 건드리는 친구들에게 두 번은 자비롭지 못할 겁니다.
저희는 아들을 아주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들에게 관심이 많은 가정입니다.
부디 잘 전달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곤 오후에 담임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피해아이들 얘기도 들어보고 상대방 친구들 얘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상대방 친구들은 악의가 있어서 한 행동이 아니라 본인들은 그 친구들과 친하다고 생각해서 장난식으로 한 것이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상처를 줄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아듣게끔 얘기도 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그렇지 않겠지만 혹여라도 다시 이러한 행동이 나타나면 저에게 바로 알려주시고 2학년 학급 반배정시 꼭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답장을 회신했다.

네. 늘 그렇듯 뉴스에서 많이 듣던 답변이네요. 다신 친하게 지내지 마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세히 조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관심과 주의를 놓지 않고 있겠습니다.

그리곤 하교한 아이에게 오늘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3교시 끝나고 불러서 상담하시고, 그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불러서 상당하셨다고 한다. 그리곤 그 아이들은 시무룩해져 돌아와 고개를 숙인 채 기가 확 죽어 보였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괴롭히거나 하는 모습이 없었고 눈에도 보복의 심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안심하지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수업 마치고 올 생각 말고 가방 챙겨 집에 올 생각 말고 무조건 택시 타고 집으로 오든, 교무실로 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든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참고 넘어가면 이제부턴 눈 구르듯 가해의 크기기 상상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고 당부했다. 길은 많으니 한 길로 해결할 생각도 말고 상황에 따라 널리 보자고 했다. 늘 엄마가 뒤에 있음을 잊지 말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 난관마다 잘 이겨내는 방법을 배워나가자 했다.


이제는 아이의 문제도 조금은 안심을 하고 동생도 짝을 잘 맺어 보냈다. 그사이 아빠는 오늘 소식에서는 호흡도 편해지시고 회복이 되고 계신다고 하셨다.


이렇게 고개를 넘고 넘고 넘어가는구나 싶다.

2023년은 이사도 있고 유난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마지막까지 무탈히 달력을 넘기고 싶다. 나와 내 가족과 더 나아가 모든 분들의 삶의 여정에 쉼표가 머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산타가 오실 땐 세상이 공평하게 이스라엘과 러시아에도 빼먹지 말고 오셨으면 좋겠다.


루돌프야 듣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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