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1.9/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어머나 무시라. 마지막 일기가 11월 8일이니 11월 9일 정신과 다녀온 기록을 쓰지 못했다. 이번주 11월 23일도 정신과 가는 날이니 서둘러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그날은 병원에 가니 세 명 정도 밖에 없었는데 상담을 길게 하시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음... 미션 두 개 주셨잖아요. 하나는 점심 안정제 줄이기, 하나는 매일한번 산책하기요"


"네 그랬죠."


"안정제는 100% 줄였는데요, 산책을 조금밖에 못했어요."


"왜죠?"

"이유가 있나요?"


"아뇨. 그냥 무기력하고 체력이 달려서요"


"흠."

"또요, 다른 일은요."


"동생 상견례가 있어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거기 갈 체력이 되셨어요?"


"정신력으로 간 거죠. 다녀와서 며칠은 죽을 각오로요."


"흠."


"상견례분위기는 어땠나요?"


"좋았어요. 제가 실수도 하고 너스레도 잘 떨고 친화력도 좋아서 다들 화기애애했데요"

"저 잘했죠 선생님 ㅎㅎ"


"환자분이 셋째 언니인데 굳이 상견례를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괜히 무리해서 병나면 또 회복하는데 오래 걸릴 텐데 왜 본인 몸을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언니 부부도 둘이나 있고, 사돈이야 결혼식 때 봬도 되고 뭐 평생 안 보고 사는 집도 많은데요"

"산책도 매일 못하는 체력으로 지방을 간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동생이 언니들은 많지만 저를 가장 의지하고요. 제가 있어야 안 불 안 해하고. 제가 5살 때부터 손잡고 키워서 반은 딸과 같아요. 마음이요. 선생님."


"그래요. 어려서 어머니 잃고 두 자매가 애틋할 수 있어요. 그 소중한 동생 오래오래 지켜보려면 본인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고요."

"환자분 문제는 주변 다 챙기고 본인은 정작 지쳐서 못 챙기는 거예요. 몸도 마음도요"


"넵."


"그러니 앞으로 어떡하셔야겠어요?"


"산책미션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요."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는 거예요. 명심하세요. 아셨죠?"


"네 선생님"


"안정제를 점심을 완전히 끊었다는 건 상당히 좋아졌다는 거예요. 본인 정신이 건강해지고 힘이 생기고 있다는 거예요. 이때 운동도 꼭 함께 치료가 들어가야 해요. 아셨죠?"


"네"


"이대로 가면 봄쯤이면 상당히 좋아질 거라고 예상되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차도가 많이 있고요."


"선생님 저 산삼 두 뿌리나 먹고 왔어요~"


(ㅎㅎ 빵 터지시며)"아~ 산삼 때문에 좋아진 건 아니고요.


"넵, 압죱."


"그럼 이제부턴 수면제 빼고 점심안정제 빼고 이주드릴게요. 집에 남은 약 버리지 마세요. 가끔 의지를 보여주신다고 약다 버리시는 분들 계시는데 간혹 필요할 땐 하나씩 더 복용하실 수도 있는 거니깐요."

"아시겠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폭풍 같은 잔소리 상담을 받고 나왔다. 집에 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 말씀은 다 맞다. 다만 정해진 시간 안에 속사포로 들어서 잔소리로 들리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비 오는 날, 무지 아픈 날만 빼고 산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을 동생 상견례라 생각하니 없던 힘도 솟아난다.


나도 체력이 좋아져서 마라톤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0.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