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2.23/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깊은 밤이네요. 좋은 꿈 꾸고 계신가요?

오늘도 어김없이 저희 집 베란다는 겁나 추웠어요. 베란다가 냉장고거든요. 그래서 식품 저장고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옛날 부모님이 땅을 파고 김치며 무나 배추를 저장하듯이요. 저는 음료나 귤박스를 저장하고 있지요.


오늘은 아들친구들을 초대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줬어요. 별로 차린 건 없지만 이런 핑계로 학원에 지친 아이들에게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쉬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얼마나 이쁘고 소중한지 몰라요. 그런데도 아이들이 사춘기인지라 조심스럽긴 해요. 또는 연민의 시선으로 닿을까 매번 더 조심하게 되기도 하고요.


아들 친구들은 다 한부모 가정이에요. 다 외아들이고요. 다 아빠랑 살아요. 요즘 그게 흠은 아니죠. 하지만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어려서 엄마와 헤어져 아빠와만 사는 게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엄마를 일찍 병으로 떠나보내고 무심한 아빠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더 잘 이해가 가거든요. 그 시린 마음을요. 그래서 그런지 자꾸 마음이 쓰여요.


배불리 먹이고 따뜻이 누워 뒹굴고 쉬고 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우리 집에서 만큼은 엄한 사람도 없고 억지로 학원 안 가도 되고 공부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없으니 눈치 보지 말고 편히 쉬었다 갔으면 하고요.


하나를 받으면 반듯이 되값아야 한다는 친구 아버님이 계셨는데요. 이제는 포기하셨는지 그냥 아이가 뭘 먹고 가도 되돌려 보내지 않으시더라고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냥 친구네 집에서는 다 같이 먹고 쉬고 그러는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은 스콘을 구워서 몇 개 싸서 보냈는데 그 아이가 잘 가지고 가더라고요.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안 가지고 갔었거든요.


두터운 방어벽이 살금살금 눈 녹듯 얇아지는 거 같아서 기쁘더라고요.


아들과 친구들이 놀고 있는데 제가 상치워 주러 들어갔다가 장난식으로 그랬어요.


(나)

"이제 크리스마스인데 뭐 없어?"


(아들친구)

"뭐요?"


(나)

"충전"

<제가 난쟁이 팔을 내밀며>


(아들)

"아, 우리 엄마 안아달란다"

<도망을 가며...>


(아들친구)

"아.. 네"


(나)

"아이고 예뻐라 우리 민중이 와줘서 고마워"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똥 OO 이치사한 ㅅㅋ 나도 안 안아 줄고야"

"엄만 책 읽는다 필요하면 불러"


사실 우리 아들이 아니라, 아들친구들을 안아주고 싶어서 꼼수를 쓴 거였어요. 너희 엄마들도 굉장히 너희를 그리워하고 안아주고 싶어 하실 거라고.


너희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빠들은 잘 표현해 주기 힘든 걸 알기예요. 이렇게라도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다 큰애들에게 허그를 해주는 게 어려운 일일수도 있어요. 전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아이들이 음악을 틀어 놓으면 춤을 추며 방에 들어가요. 애들이 웃느라 음악을 끄면 멈췄다가. 아들이 나가라고 하면 음악을 틀어주면 나가겠다고 하며 리듬에 맞춰 상을 들고 나왔어요.


그런 나날들이 이어져서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아이들에게 이모는 조금 가까운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배고플 때도 마음 고플 때도 올 수 있는 그런 친구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오은영박사님이 늘 그러셔요. 이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한 사람, 따뜻하게 포옹해 주는 한 사람,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해 주는 한 사람, 네 편인 한 사람만 있으면 아이들은 바르게 자란다고 말이에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그저 따뜻한 밥. 따뜻한 말. 머리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기 기다려주기. 그 정도라도 아이들에게 힘이 된다면 저는 참 기쁘겠어요.


잘 자라. 우리 이쁜이들~♡

메리크리스마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2.20/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