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09/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어제부터 다시 스마트 시계를 했다. 귀찮아서 외출 시에만 했었는데 건강기록을 좀 보고 싶었다. 과호흡 때는 신기하게 스트레스지수가 10씩 올라갔다. 심박수도 신기하게 빨라진다. 스마트시계라 맹신할 수는 없지만 블루투스 연결로 데이터를 좀 축척할 생각이다.


일기의 제목은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인데 매번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기분이다. 잘 자기가 이렇게 힘든데...

오늘도 수면제 먹고 두 시간씩 끊어 잤다.


난 뭘 잘 잤다는 걸까?

아님 잘 자고 일어나고 싶었던 염원이었을까.

암튼 제목과 맞지 않는 거 같아 뭔가 쫌 그렇다.


12월 말부터 아들이 복싱을 시작했다. 생각 외로 재밌다고 집에서 매일 연습을 한다. 도장에서는 잘한다고 기초를 뛰어넘고 바로 글러브를 주셨다. 아마 전에 이것저것 운동을 많이 한 덕을 보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아들이 다니는 데는 킥복싱이 아닌 복싱이다. 가만히 연습하는 걸 보니 참으로 귀여웠다. 마침 내가 잠시 기운이 날 때였다. 마치 새끼쥐가 글러브를 끼고 낑낑 거리는 거 같았다. 나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리 와 보라고 했다.


일단 눈빛이 중요한데 눈빛이 너무 웃고 있었다. 어떤 펀치에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끝까지 보는 걸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코 끝이나 귀를 보라고 하고 닿지 않을 만큼 펀치를 하며 눈을 감지 말라 시켰다. 아들은 상당히 재밌어했다.


그다음은 글러브로 어깨와 팔꿈치 사이를 몸의 회전력으로 치는 걸 가르쳐 주었다. 그리곤 나를 쳐보게 시켰다. 아이는 어깨 관절을 쳤다.


"아니, 다시"


"엄마 안 아파?"


"응, 다시 쳐봐"


"퍽"


"아냐, 엄마가 널 적당히 쳐볼게. 오른쪽에 힘주고 있어"

"퍽"


"악.. 진짜 아파 엄마"


"아프지만 죽지 않고 멍 안 들정도지"

"그래야 너도 엄마를 칠 맛이 나지"

"다시 쳐봐"


"퍽"


"응. 좋아"

"근데 잘못하면 손목 부러져. 손목이 꺾이잖아. 넌 야리야리하니 발차기든 머든 회전력을 이용해야 해"

"맞아보는 연습도 중요해. 맞아봐야 때릴 줄 알아"

"엄마하고 팔뚝 맞기나, 밀치기 배우는 것도 중요해"

"치는 것도 맞아 봐야 강약 조절해서 치고 머리에서 빨리빨리 계산되는 거야"

"그 느낌을 아니깐"

"와, 재밌다 엄마"

"또 하자"


"그래. 진짜로 붙는 거야"


"퍽"


"퍽"


"퍽"


"엄마 그만, 힘들어"

"그래"

"윤호야 오른손잡이의 필살구는 왼손일 수도 있어. 상대의 습관을 잘 관찰해야 해"

"그러니 오른손잡이라고 오른손으로 강펀치를 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둘 다 단련해야 상대의 약점대로 내가 필살기를 날릴 수 있어"

"체급이 안되면 업어 쳐 넘어트려 때리고"

"체급이 되면 맞더라도 전면전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전진해"

"다리는 허벅지 열 번 차는 거보다 뒷무릎관절 제대로 한 번 차서 팍 굽혀버리는 게 나아"


"너 킥으로 엄마 무릎 굽혀봐"


"퍽"

"퍽"

"퍽"


"안 되지?"

"내가 힘주고 있잖아. 그리고 넌 허벅지와 종아리를 때렸잖아"

"내가 너 굽혀볼게 자신 있는 다리에 힘줘 봐"


"퍽


"윽"

"윽, 엄마 친엄마 아니지?"


"아니. 필요할 때를 위해. 네가 선빵을 맞았을 땐 이렇게 하라고.. 그다음은 엄마가 경찰서 가서 무릎을 꿇더라도 알아서 할게"


"나쁜 시끼들이 좀 많아야지"

"킥이 중요해"

"주먹 열방보다 날아 차기 한방이 나아"


"와, 엄마 진짜 대단하다. 우리 집은 엄마가 아빠 같고, 아빠가 엄마 같아"


"엄마 힘날 때마다 다시 하자 애기야"

"항상 실전이 중요해"


"엄마..."

"엄마 뭐야?"

"난 특공무술, 합기도, 검도, 태권도 다니며 배운 걸 엄마는 어떻게 알아?"

"엄마 맥가이버 칼 같아"

"헐, 못하는 게 없어"


"자기야... 자기 복싱선수해라"


"헐"

"나"

"난 어떻게 알지?"

"그냥 그렇게 해야 효과적일 거 같아서"


그리곤 한참 생각했다. 난 어떻게 알지?


아, 미스 때 좋아하던 UFC 효도르 덕이다. 그때는 효도르 전성기라 방송을 많이 했다. 그의 사이다 펀치와 맞으면서도 전진하는 속도와 승부욕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나 휴일에 효도르 경기는 꼭 챙겨 보곤 했다. 광고 회사를 다녔을 땐 무료 티켓이 더러 생겼다. 그중에서 권투경기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나만 몇 번 혼자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쌓여 되지도 않는 훈수질을 했다.


다행인 건 윤호가 자기가 무술마다 배운 진액들이었다고 한다.


저녁이 되니 팔이며 허벅지가 쑤셔온다. 그러고 보니 난 종합격투기를 더 좋아한다. 누굴 패기 위해서라기 보단 스포츠로 전면전에서 전진할 수 있는 게 좋다. 내가 스키나 수상스키 같은 레저를 다 좋아하듯이 말이다. 난 춤만 빼곤 몸으로 하는 운동은 농구도 좋고 다 좋다.


몸이 좋아지면 아들과 격투를 자주 해서 서로 몸빵도 키우고 아들 담력도 키워주고 싶다.


특히 주먹만 날아오면 그 깜박이는 눈빛~

ㅋ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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