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10/수)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몰아치는 호흡 속에 참을 수 없는 두통은 알람과 같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를 각성하며 오늘을 살려하는데 이놈의 건강이 맛보기를 하듯 호락호락하게 돌아오질 않는다. 좀 괜찮을 때는 줄넘기 백번하고 러닝 삼십 분은 거뜬히 할 거 같았는데 또다시 허수아비로 돌아왔다.


약을 챙겨 먹고 안정되길 기다린다. 안정이 되면 못 잔 잠도 충전하고 명상도 하고 싶다.


어제부터 아들에게 중등수학을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일을 위해 꾸준히 할 일이 하루에 몇 가지는 있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게 '아이 키우기, 내 운동, 내 글쓰기, 책 읽기'이다.


오늘만을 위한 나는 지치고 환멸을 느낀다. 동물은 본디 도토리를 먹고 숨기는 두 가지 활동을 하게 설계되어 있다. 나는 일어서서 내 발로 다시 걸어 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놈에게 말할 테다.


"과호흡 너 거슬려, 충분히 겪었어. 이젠 좀 가"

"우울증 너도 이젠 나가. 너로 인해 많은 걸 보고 깨달았어. 고마워. 그만하면 됐어"

"불안장애.. 넌 적당히 해.. 요즘은 사자가 없어. 내가 조절할 테니.. 꼭 필요할 때만 나와"


선언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현재의 엄마가 필요했다. 끊임없이 토론하길 바라고 시도 때도 없이 질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스토리를 말하고 싶어하고 게임'원신'에 대해 나와 열심히 열변을 토하길 바란다.


글러브를 끼고 와 한판만 살살하자며 스파링 부탁을 하고, 쉼 없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데...


내가 이래 자주 아파서야 아이가 보내는 그 소중한 시그널을 자주 놓칠 듯싶다. 난 아이의 이 중요한 성장기를 함께 해주고 싶었다.


세상은 바꿀 수 없지만 가정환경은 바꿀 수 있다. 학원을 돌리지 않고도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 몰입으로 시험시간에 맞추어 공부하는 연습을 시키고 기초를 튼튼히 해서 수학의 연결성을 그려주고 싶다. 주입식 외우는 공부가 아닌 길을 기억하듯이 연상기억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정신과를 다녀온 게 효과가 있었다. 공감을 해주시진 않았지만 깊은 빡침으로 감정을 메마르게 해 주셨다. 그리곤 나의 삶의 집중해야 함이 맞다는 의견은 맞는 말씀이라는데 동의한다. 쉽진 않겠지만 두 달 넘게 오늘내일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내 매일과 정신을 놓아버리는 일은 이젠 그만하려 한다.


사람 생명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돌아가셔도 슬플 일이고, 이대로 늘 대기 중이어도 힘든 건 사실이다. 나도 내 가정을 지켜야 하고 나를 지켜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다.


나의 거친 숨이 용가리처럼 씩씩 거린다,


너... 아직도 않갔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0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