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13/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나는 지금 플라스틱 감정이 든다. 20대에 처음 쌀국수를 먹으러 갔을 때의 느낌이다. 고수라는 미나리 같은 향신료를 국수에 넣어 줬는데 첫맛이 플라스틱 맛이었다. 이걸 왜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나라의 음식 문화라고 해서 주는 데로 먹었었다.
지금 내 기억과 감정이 그때와 같다. 지금 나의 기분이 아주 이상한 맛이다.
발인을 하고 올라온 지 하루가 지났다. 죽을 거 같던 피로를 조금 풀고 조문 와 주신 분들과 마음을 함께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부터 드렸다.
그리곤 다시 두세 번의 잠이 들다 깨었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데 뭔가 많이 어색해졌다. 뭘까 생각해 보니 아빠의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병원에 계신 거 같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가신 거 같은 느낌도 아니다.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그렇다고 평온하지도 않다.
나는 그냥 우주에 떠있는 기분이다.
고통이 끝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면 아빠의 부재가 믿겨야 하는데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뭐가 다행인건지도.. 내 정신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님 슬펐으면 좋겠다. 막 눈물이라도 나고 그랬음 좋겠다. 왜 슬프지도 않는걸까. 아무 감정도 안 드는 내가 살짝 무섭고 두렵다. 약간 소시오패스인가 싶기도 하고. 아 이 기분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삼일장은 나의 기억과는 좀 많이 달랐다. 나는 장례식 내내 별로 울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매우 이성적으로 감정을 잘 조절했다고 기억한다. 근데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는 주저앉기도 했고, 스스로 잘 서지도 못해 기대서 울었다고 한다. 제일 많이 운자식이 나라는데.. 내 기억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아님 지워버린 것일까.
난 나대로 매우 바쁘게 조문객을 맞으며 슬퍼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많이 누워 있던 사람도 나였다고 한다. 동생이 그런다
"'언니의 상태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식구들은 더 바빴어"
이상하다. 난 큰언니 조문객, 작은언니 조문객, 내조문객... 친인척까지.. 챙기느라 죽을뻔한 거 같은데..
내 기억에는 첫날 낮에 두 시간 잠든 기억과 조문객 없을 때 잠깐씩 쉬러 들어간 기억 밖에 없는데 말이다.
무슨 큰 행사를 치르고 온 기분인데, 거기까지가 끝이다.
삶이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집도 그대로..
고양이도 그대로..
나도 그대로..
이게 말로만 듣던 '애도기간'이라는 걸까.
아들이 말한다.
"역시 엄마는 엄마의 상처를 감추는 사람이야"
"왜?"
"스스로 기억을 지웠잖아"
"엄마가 제일 많이 울었고 내가 엄마 어떻게 될까 봐 늘 뒤에 있었어"
"근데 엄만 기억을 못 하잖아"
"막내 이모 우는 거만 기억하고"
"엄마는 늘 엄마보다 누굴 보호하려고 해"
미치겠다.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내가 일시적 치매라는 말인가. 다시 정신과를 가는 날 상담을 해 봐야겠지만 이게 좋은 상태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입관을 참석했다.
입관부터 운구, 화장, 안장...
한 분의 사람이 유골이 되어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게 좀 심적으로는 충격이 컸다.
그리곤 추모공원에서 안장 때 치토(흙이불)를 해드릴 분 나오라고 했다. 치토는 유골을 땅에 넣고 흙을 삽으로 한번 퍼서 세 번에 나누어 덮어드리는 행위이다. 첫 번째로 큰언니가 덮어 드렸다. 그리곤 내가 두 번째로 덮어 드렸다. 내가 안장해 주시는 분께 물었다.
"많이 해도 돼요?"
"안 돼요. 한 번씩만 하세요"
그리곤 윤호가 세 번째로 삽을 들어 흙이불을 덮어 드렸다. 그리곤 더는 치토 할 사람이 없어 안장사님이 안장을 마무리해 주셨다.
자려는데 윤호가 묻는다.
"엄마 근데 왜 치토를 많이 해되 되냐고 물은 거야?"
"혹시 그 순간에도 장난친 거야?"
"아냐.. 엄만 그냥 할아버지 이불 엄마가 여러 겹 덮어드리고 싶었어. 엄마랑 얘기하는 거 제일 좋아하셨잖아. 안장사님보단 엄마가 많이 덮어드리는 게 뜨실 거 같아서"
"아, 그래.. 난 또 엄마가 그 말해서 살짝 웃겼거든"
"그럼 넌 왜 치토를 했어?"
"난 장손이니깐.."
"큰 이모네도 형아가 있지만 둘째자나"
"그래서 할아버지가 첫째이며 아들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나한테 장손이라 했으니깐"
"몸이 먼저 삽을 들었더라고, 내가 당연히 덮어드려야 하는 거 같았어"
"응, 그랬구나. 고마워"
"고맙긴... 당연한 거지 엄마"
눈으로 보고 행동했는데도 인지가 안 되는 게 있다. 학습거부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무엇이 나는 살짝 혼란스럽다.
이 무엇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