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2.16/금)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오늘 꿈에 아빠가 또 나왔다. 내가 너무 걱정하고 있어서인지, 아님 아빠가 나를 안심시켜 주시려고 인지는 모르겠다.
평소 요양병원 계실 때처럼 통화를 했다.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오랜 통화를 했는데 그전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말씀만 생생히 기억난다.
"아빠 잘 있다"
"걱정하지 마라"
"고맙다"
살아생전에도 제발 병원에서 나가게 해 달라던 분이 잘 있으시다니, 걱정하지 말고, 고맙다니..
꿈을 깨고 난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곳에 잘 계신다는 안부 같아서 가슴이 메어졌다. 사진첩에 있는 아빠의 동영상과 사진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아직은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 같다.
나는 속 시원하게 시산맥 신춘문예에서 떨어졌다. 떨어지고 알았다. 그전에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와 컬이 맞는 문학사에 응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별 대미지는 입지 않았다.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하나 생겼으니 오히려 하나 배운 셈이다.
그나저나 아들에게 재밌는 얘길 들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인들만큼 온갖 풀이란 풀을 다 뜯어먹는 나라란 없다고들 한다.
외국에서는 안 먹는 많은 풀들도 한국에서는 일단 다 먹을 수 있는지부터 판단한다고 한다.
만약 독초라고 한들 독을 빼서 먹고, 독이 없는 시기를 파악해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에 있는 풀들이 다들 귀한 나물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풀과 나무 해초에 목숨을 거는 걸까? 아마 보릿고개와 여러 나라의 침투에서 전쟁을 겪으며 기아를 이겨내기 위한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동양에서는 보통 신장이 아주 큰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고기도 야채도 골고루 먹고 물이 깨끗한 덕에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조리법도 발전했으니 말이다. 아픈 역사는 현 문명에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아들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태어난 해에 그렇게 잔인한 일이 서울에서는 일어났다는 사실이 마냥 충격이었다. 역사로 아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역사로 알 때보다 분노하게 되었으면 정치의 중요성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교육하게 된 셈이다.
유시민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걸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들 자체로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런 것들까지 다 나의 스트레스로 가지고 오지 마세요. 그러면 세상 살기 너무 힘듭니다.]
이분은 나의 활화산을 꺼주시는 소방관 같다. 누구에게나 이런 소방관 같은 분이 한분씩 계셨으면 좋겠다. 정신적 스승은 삶을 지탱하게 하고 한발 한 발씩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