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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17.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2.16/금)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오늘 꿈에 아빠가 또 나왔다. 내가 너무 걱정하고 있어서인지, 아님 아빠가 나를 안심시켜 주시려고 인지는 모르겠다.


평소 요양병원 계실 때처럼 통화를 했다.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오랜 통화를 했는데 그전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말씀만 생생히 기억난다.


"아빠 잘 있다"

"걱정하지 마라"

"고맙다"


살아생전에도 제발 병원에서 나가게 해 달라던 분이 잘 있으시다니, 걱정하지 말고, 고맙다니..


꿈을 깨고 난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곳에 잘 계신다는 안부 같아서 가슴이 메어졌다. 사진첩에 있는 아빠의 동영상과 사진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아직은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 같다.


나는 속 시원하게 시산맥 신춘문예에서 떨어졌다. 떨어지고 알았다. 그전에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와 컬이 맞는 문학사에 응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미지는 입지 않았다.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하나 생겼으니 오히려 하나 배운 셈이다.


그나저나 아들에게 재밌는 얘길 들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인들만큼 온갖 풀이란 풀을 다 뜯어먹는 나라란 없다고들 한다.


외국에서는 안 먹는 많은 풀들도 한국에서는 일단 다 먹을 수 있는지부터 판단한다고 한다.

만약 독초라고 한들 독을 빼서 먹고, 독이 없는 시기를 파악해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에 있는 풀들이 다들 귀한 나물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풀과 나무 해초에 목숨을 거는 걸까? 아마 보릿고개와 여러 나라의 침투에서 전쟁을 겪으며 기아를 이겨내기 위한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동양에서는 보통 신장이 아주 큰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고기도 야채도 골고루 먹고 물이 깨끗한 덕에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조리법도 발전했으니 말이다. 아픈 역사는  문명에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아들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태어난 해에 그렇게 잔인한 일이 서울에서는 일어났다는 사실이 마냥 충격이었다. 역사로 아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역사로 알 때보다 분노하게 되었으면 정치의 중요성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교육하게 된 셈이다.


유시민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걸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들 자체로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런 것들까지 다 나의 스트레스로 가지고 오지 마세요. 그러면 세상 살기 너무 힘듭니다.]


이분은 나의 활화산을 꺼주시는 소방관 같다. 누구에게나 이런 소방관 같은 분이 한분씩 계셨으면 좋겠다. 정신적 스승은 삶을 지탱하게 하고 한발 한 발씩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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