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수채화

만담 해풍소

by 이음

(어둠)

아우 여기 좀 비춰 주겠나!


(빛)

무슨 일이시죠. 형님

제가 필요한가요?


(어둠)

여기 어린 고라니가 있네.

어미를 잃은 것 같으니 길을 좀 찾게 도와주게.


(빛)

형님 제가 가면 놀랄 거예요.

고라니는 빛을 보면 놀라 멈추거든요.

낮에는 내가 익숙하겠지만, 어둠 속에서는 갑자기 나타나면 놀라 경직되더군요. 마치 인간 같죠?


(어둠)

...

어떤 면에서 고라니가 인간 같다는 거지?


(빛)

인간은 어둠 속에서는 빛을 갈구하지만 막상 빛을 발견하면 눈을 가리죠. 눈을 가리고 멈춘 뒤에서야 빛이 왔었다는 걸 깨닫지 않나요?


(어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인간의 눈을 가리는 건 신의 손이라네. 빛 속에 모든 것을 보기보다는 자신 앞에 있는 소중한 것을 보게 하기 위함이지.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에 좋은 게 아니듯 말일세. 만약 모든 인간이 금을 발견하는 운이 있다고 해보게. 그게 과연 운이겠는가?


(빛)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그럼 형님 인간들은 빛은 좋은 거고 먼저인 줄 알아요. 어둠은 나쁜 것이고 나중인 줄 알고요. 억울하지 않으세요?


(어둠)

나는 억울하지 않네. 나는 자네를 앞으로 내보냄으로 인해서 나를 비추는 거라네. 때론 나를 의식하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소유하지 않아도 포함하고 있는 것들 말일세.

인간은 인간을 소유할 순 없지만 가족이라 말하지.

엄마는 자식으로 하여금 존재가 입증되듯이 말이야.


사랑은 또 어떤가? 소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네. 상대를 포함할 뿐이지. 어둠 속에 빛이 포함되어 있듯이 말일세. 삶은 그런 거 아니겠나? 우선과 나중은 처음부터 없었다네. 어둠과 빛만 있을 뿐.


(빛)

와~ 형님 철학자 나오셨네요. 언제 그런 생각을 다하셨습니까?


(어둠)

허험, 내 렘브란트 그림 그릴 때 옆에서 물감 좀 짰다네….


(빛)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