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Mar 29.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3.27/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무의식의 과잉보호는 힘들어>

이음


나는 지금 약을 안 먹고도 하루에 세네 시간을 말똥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처음에는 정신과 약과 이비인후과 약의 시너지 효과였는지 알았는데...


이것도 찾아보니 불안장애의 일종인 스트레스로 인한 기면증상이다. 그러니 나는 깨어있는 세네 시간을 슈퍼우먼처럼 날아다니기 바쁘다. 주꾸미도 데쳐서 애기 밥도 먹여야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간식거리도 준비해 두고. 식구들 밥 먹는 사이 설거지도 하고. 빨래를 개고. 봄옷정리를 하다 보면 또다시 졸고 있다.


잠깐씩 깨는 시간을 쪼개서 글쓰기 숙제를 하고, 꿈에서 쓴 글이 찐으로 잘 쓴 글이지만 깨고 나면 기억엔 이미 없다.


기대하던 일이 일정대로 되진 않았지만, 난 요즘 참 행복한 기면과의 동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쇼크를 받았다고 나처럼 원하는 만큼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다 가끔 메모장에 아빠 신분증 사진을 보면 한쪽 갈비뼈에 통풍이 오듯 아리지만 잊지 않기로 했으니, 그냥 시골에 계신다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나는 나를 돌보느라 아빠를 다 용서하고 사랑했던 순간들만 남겨두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밉지도 않고 원망스럽거나 아프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자매들의 단톡방에서 알게 되었다. 다들 아직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애도의 단계란 없나 보다. 상처도, 상황도, 기질도 다 다르니 같을 리가 없는데.


난 그동안 염치없게 너무 행복했다.

내 행복 뒤로 자매들의 상처가 곪았을걸 생각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럴 때가 제일 곤란하다.

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지켜만 봐야 할 때.


지금은 어떤 위로도 안 들릴 거 같다.

참았던 감정이 터진걸 보니 말이다.

언제쯤 우리 자매 모두 무의식까지도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까.


충분히 아프고 단단한 근육이 생겨 회복탄력성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슬퍼만 하기엔 요즘봄이 막 예뻐지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또 몇 분 후면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애기학교 보낼 때 일어나리라.


나의 무의식이  나를 스트레스에서 지켜주려 과잉보호를 하고 있다. 졸며 실내자전거를 한 시간 겨우 타고 글을 쓴다.


"이젠 과잉보호 안 해줘도 충분히 회복된 거 같아"

"무의식아 그러니 기면이 좀 그만 보내줘"

"내가 할 일이 좀 많아서 말이야"

"보호? 그것도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3.22/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