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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12.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5.11/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_ 중2 엄마는 처음이라


어제는 혼란한 하루였다. 아들 친구 중에 여자친구 생긴 친구가 생겼다. 문제는 둘이 놀면 되는데, 자꾸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 수를 맞춰서 만나 놀자고 전화를 한다. 아이들 나가서 노는 순서는 거의 비슷하다. 카페, 밥집, 영화, 노래방, 디저트카페이다. 우리 아들은 그제 소풍을 마치고 아이들과 뒤풀이로 놀고 왔다.


근데 어제 또 나오라고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은 엄마 속도 모르고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고 친구들은 엄마 무시하고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하하하하"

내생에 처음 겪어보는 난감한 일.


아들은 못 나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애들이 돈 없어도 된다는데"


"엄마는 안돼"


"왜?"


"엄마는 너의 의견을 거의 들어주지?"

"그렇다고 우리 집이 다 예스인 집은 아니야"

"우리 집도 교육관 있어, 너 어제 5만 원을 쓰고 왔잖아?"


"응"


"그래, 소풍 갔다 남은 돈을 내서 는데 고 온 건 그렇다 쳐. 근데 그건 한 번이면 족하지"

"너의 나이에 수입보다 소비를 먼저 배울 일은 아니야. 넌 지금 돈이 하나도 없잖아? 근데 가서 얻어먹는다? 가끔은 괜찮아 너도 사준 적 있을 땐. "

"근데 얻어먹기로 작정하고 나가는 건 아닌 거야. 사람이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비굴해져. 어깨도 못 피고. 니가 용돈날까지 버티던가? 아님 집에서 알바를 해서 벌어도 되잖아?  자친구가 거기 있는 것도 아니고. 니 썸녀도 안 나왔다고 하고, 지금 짝도 딱 맞다는데? 굳이 눈치 없이 나가"


"그렇.."


"엄마도 중2 엄마는 처음이라 어느 게 잘하는 건지, 맞는 건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네가 적어도 일주일 이상 니방을 사람방처럼 치우고 살고, 일주일 동안 매일 씻고, 이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좀 보여주면 너의 그런 외출을 생각해 볼게"


"집에서는 아직도 애기면서 밖에서는 어른들 하는 거처럼 흉내 내고 다니는 게 맞는지 생각해 봐? 밖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 하루종일 리어카 산더미처럼 쌓아서 몇 번을 갔다 파셔도 만원이 안된데. 너희가 하루에 쉽게 쓰는 오만 원 십만 원은 청년들의 어렵게 취직한 하루 일당이야."


"버는 어려움을 모르고, 생활 독립체가 될 준비도 안 됐으면서 소비만 어른들을 따라 하는 게 맞까"


"엄마는 빵점 맞고 웃는 아들은 부끄럽지 않은데, 지금 너네의 모습대로 크면 너무 부끄러울 거 같아."


"여자친구 사귀고 싶으면 돈 벌어."


-매일 아침만 스스로 한 달 동안 차려 먹어도 만원

-방청소만 한 달 동안해도 만원

-매일 샤워를 한 달 동안해도 만원

-용돈 25,000원

한 달에 55,000원이면 데이트 비용 충분하지.

이건 다 기본 생활이야..


"그리고 중학생답게 데이트를 해. 도서관 가서 책 보고, 공원 가고. 편의점이나 싼 카페 가고 김밥이나 컵라면 먹고. 같이 공부하고 게임하고.  같이 돈 내면 충분하지. 가 다 낼 필요 없잖아? "

"데이트하면서도 돈 없는 어려움을 알아야 해. 그런 거 싫다는 여자는 너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런 애는 걸러"


"알겠어. 엄마 한번 안 되 안 되는 사람이지"

"엄마 애네 또 전화 온다, 아 미치겠네"

"여보세요. 안된다니깐. 엄마 바꿔줄게"


"엄마다"


"왜 안 돼요?"


"아들아.. 우리 집에선 빵점 맞아오는 건 괜찮아도 인성교육이 안 되는 건 안된단다. 수달 교육 다 마치면 놀러 가라 할게"


"아 그냥 보내주세요"

(모르는 여자아이, 우리 아들을 좋아하는 거 같음)


"미안하구나. 재밌게 놀으렴"


"자.. 수달아 전화기.."

"이 눔의 시키 진짜로 바꿔주면 어떡해" 


"아, 그럼 어떻게 열 통이고 스무 통이고 계속할 애들인데.."

"엄마가 끊어줘야 전화를 안 하지"


"엄마 지호네 엄마도 여자들 만나러 가는 건 안된다고 못 나가게 했데. 우리 집에 가는 건 된다고 했다는데? 와도 돼"


"아들아... 지금은 방치우고 씻기로 했잖아"

"6월까지는 친구초대 못한다고 했잖니"

"노래방 가 밤늦게까지 잠수 탄 죄 벌 받는 중이잖아"


"아 맞다"

"안된다 해야겠다"

"엄마 방금 '엄근진'했어'


"그게 뭔데?"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엄마, 어우 무셔"


"으이고, 이 눔의 시키 끝까지 장난이여. 방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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