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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11.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5.10/금)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가벼운 눈꺼풀. 파닥이는 몸. 개운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오늘의 수면시간은 여덟 시간이었다. 충분히 맑은 정신과 상쾌한 아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오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구나.


가볍게 음악을 몇 곡 듣고, 브런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가벼웠는데 마무리가 무거웠다.

나는 아직도 스펀치처럼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면이 있다.


우울증 환자의 글이 메인에 올라와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의 상황이 지금 어떤지 이해되고, 그의 글이 우울증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기재하고 타당성 있게 해석하는 재주가 있었다. 설득하는 재능을 갖춘 작가라 더 위험했다. 현재 힘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글을 읽으면 죽음을 좀 더 가까이하기가 쉬워지리라.


아침부터 글의 위험성에 놀라고 말았다. 그의 글 솜씨면 선동을 해도 될 정도이다.

나는 같은 우울증 환자로써 충분히 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얼마나 숨이 막혀 토해내고 싶은지...


같은 상황에 처한 환자이기에 다른 점 말할 수 있다. 나의 고통과 처지를 차라리 한탄에서 끝나는 게  났구나.


타인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그건 너무 위험하다. 그 순간 누군가의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사신이 봉인해제 될지도 모르 일다.


그 글을 여러 사람이 볼 텐데, 자칫 설득되고 끄덕여질까 려된다.


삶은 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양지는 양지대로 이유가 있고, 음지는 음지로 이유가 있다. 꼭 양지에서만 식물이 자라는 건 아니다. 분명 음지에서 서식하는 식물들도 다하다. 음지라 해서 논리적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게 나의 삶과 죽음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나도 어떻게든 오래 사는 게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때론 성별의 정체성이 혼돈되어 태어나듯이, 삶이 죽음 앞에 무력한 사람들도 있을 다.


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고통스러운 마음, 무너져버린 자아와 세계 이것 역시 중요하다.

러나 그건 실존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정신들의 합이다.


힘들겠지만 정신은 치유가 가능하고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육체는 되돌릴 수 없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수만 세포들의 희생이다. 큰 한 덩이가 아니고 당신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동식물들의 합이다.


지금도 혈관 속에서 지속을 위해 끝없이 순환하는 혈류들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살길 바라는 건 당신의 몸이다.


때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그래서 어릴 적 엄마와의 행복했던 추억하나를 붙잡고 평생 힘든 삶을 버티는 사람도 있다.


육체도 정신을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의 펄떡이는 심장에 손을 대고 심장의 얘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당신을 격하게 껴안고 내면 깊숙한 아이의 얘기를 들어 보길 바란다.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자아가 일어설 수 있도록 보다 육체에 가까이 닿아 보시라. 육체도 반드시 당신에게 끊임없는 삶을 갈구하고 있을 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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