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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13.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5.12/일)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_의사도 아플 수 있구나


오늘은 정신과를 다녀왔다. 선생님과는 저번에 한번 부딪혀서 껄끄러울지 알았는데, 의외로 더욱 친절해지셨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래, 저번주 금요일이 오시는 날인데 조금 늦으셨어요. 어떻게 지내셨죠?"


"매우 불안하고요. 초조하고 수면도 들쭉날쭉했고요.  심장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어렵게 서류를 다 작성해서 변호사사무실에 제출했거든요. 텍스트도 다 달고 서류 순번대로 포스트잇까지 붙여서요"

"아래 직원들이 나누어서 검토하다 한 덩이가 분실된 거 같아요. 계속 연락이 오는데 포스트잇도 안되어 있고, 서류도 들쑥 날쑥이고, 없는 서류가 많다고 하는 거예요. 법원 서류제출마감일에서야 연락이 왔어요"

"제가 서류가 분실된 거 같은데 정확히 어떤 게 없는지 말해주면 최대한 다시 해주겠다 했더니 분실됐다고 인정을 안 하죠. 그냥 제가 안 준 거라고. 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자기네가 대충 다시 작성해 본다더라고요"

"사진을 찍어서 내역을 보내주고 물어보는데, 1차 제출서류를 복사해서 만들고 있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제출을 안 해서 자기네가 해주는 거라는 식으로 몰아가더라고요"

"그날은 법원서류제출 마감일이었어요. 남편은 가서 뒤집어엎겠다고 하고 돈 받고 일하면서 일을 그렇게 하냐고 난리이고. 저는 화도 못 내고 남편한테 가서 화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 안에  이들이 일을 처리할 수 있게 지켜봐 줘야 할 때라고 했죠"

 "그리곤 변호사 사무실에서 17일 재판 결론이 안 나고 또 연장될 수도 있고, 추가서류 요청이 있을 수 있다는 좌절적인 답변을 들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법원에 서류 도착을 확인하니 잘 도착되었다고 해서 안심을 했어요. 그 후 사건 조회를 해보 서류 접수가 안되어 있는 거예요. 1차 때는 하루 만에 서류접수가 조회됐는데요. 17일(금) 재판인데 아직도 접수가 안되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참 난감한 상황이시네요. 이상하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런 실수사례가 많이 들려와요"

"본인이 잘 못한 것도 아니시고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얼마나 불안하시겠어요"

"몸에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세요?"


"우울증은 아닌데요. 불안한 거죠. 매일 아빠꿈을 꾸고, 자다 깨고 자다 깨고, 그러다 너무 피곤하면 8시간씩 곯아떨어지는 날도 있고요"

"심장이 내려앉는다? 부서지는 거 같다? 그런 느낌이에요"


"우리가 더 힘든 일도 다 지나왔잖아요"

"변호사 사무실도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잘못되면 서 엎으세요"


"흐흐..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요. 결과가 나 상황에서"


"수면제가 필요하실 거 같아요. 잠을 못 자면 불안증상도 더 심해지고 몸도 더 힘들고 무기력해지거든요"

"참 삶이 내 맘 같지 않죠.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 또 버텨보자고요. 이 주 후에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곤 내과는 기운이 없어 안 가고, 약국 갔다. 약국에 내과 의사 선생님이 본인약을 타러 오셨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옆에 정신과 오는 날이라서요"


"네. 볼일 보고 가세요. 나도 약 타러 온 거라"


"아, 의사도 아플 수 있구나"

"그래 그렇담 나도 아플 수 있지"


그게 뭐라고 내과 선생님이 약 지어가시는데 위안이 되었다.


택시를 타러 가는 길에 어르신들 몇 명이 백화점 앞에서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시는 듯했다.

특유의 어르신들 발음으로..


"알 라 뷰"


............ 를 하며 헤어지고 계셨다.

순간 고개를 돌려 굳어 버렸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


내게 왠지 익숙한 소리.


"  뷰.."


한참을 그분들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백화점 앞 택시정거장에서 택시를 타고..


"안녕하세요"


남편이 말했다.

"어디로 가 주세요"


그 후 나는 택시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왜 울어?"


"아빠가 나한테 자주 하던 말이야"

"알 라 뷰"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깐 아빠가 그 아저씨를 통해 다녀가신 거 같아"


"사랑한다고.."


"내 딸아 힘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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