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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l 24. 2024

우산이 없어도 길을 나섭니다

수필통

이 휴가를 가신 걸까요?

하늘에서 물풍선이 터지고 물총을 쏘고 난리가 났습니다.

우산을 쓰고 나갔지만 하늘이 우산보다 넓기에 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런 김에 우산은 옆으로 들고 비를 흠뻑 맞으면 소리를 지르고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캬~

시원한 빗줄기가 세차게 때려주니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니다.


담벼락에 능소화가 피었길래 물었습니다.


"너희도 이런 기분이니?"


능소화는 아무 말 없이 탱탱한 꽃잎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즐기는 듯했습니다.

나도 능소화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와 눈가로 흐르는 빗물을 즐겼습니다.


다행이지요. 

장대비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 미친 여자'의 연극을 마음껏 찍고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 안면마비 재발 증상이 있어 다니던 병원을 찾았는데, 뇌졸중이나 풍이 의심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막막하고 멍했습니다.


마흔 중반에 뇌졸중이라니...


촉각을 다투는 일이라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서도 위급해 보였는지 다른 환자들보다 우선적으로 검사를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CT, MRI, 심전도부터 각종 검사를 다 받았습니다.


그 몇 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듯합니다.


일단 인지가 되지 않아서 의사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고요.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발을 들 수 없었습니다. 눈도 아프고 시야도 흐리고 얼굴 한쪽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극한 경련이 일어나 1초도 쉬지 않고 실룩거렸습니다.


MRI 검사를 하러 갔더니 담당 선생님이 기계소리가 많이 심하니 정말 못 참겠으면 버튼을 누르라고 하시더라고요. 기계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는데 의외로 마음이 침착했습니다. 그리곤 헤드폰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가슴으론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편지를 쓰고 있었지요. 소통이 안되고 사지를 쓸 수 없는 순간에도 저는 마음속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 나는 글을 쓰고 싶구나.. "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 해도 내 마음은 글을 쓰다 눈을 감으려는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고, 뭔가로부터 해방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더 의연하게 검사를 받았던 거 같습니다.


검사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두 눈에서 안도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검사결과를 말씀해 주시는데 '급격한 스트레스도 이런 통증 및 마비 증상을 가져올 수 있으니 다니던 정신과에서 진료를 다시 받는 게 좋겠다고요.'


'나는 의식하며 인상을 쓰고 살지 않아도 나는 계속해서 통증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러다가는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에 내 삶이 먹혀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스트레스이고 힘이 든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반드시 진행 중인 스트레스만이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팠던 상처와 후회들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내가 바라는 삶과 지금의 삶의 간극 또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겠고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왜 이렇게 먹고사는 게 힘드냐고요.


전 아니거든요.

살아 있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많고요. 일어나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아프지만 않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걸 깨닫는데 삼 년 반이나 걸렸더라고요.


내 삶에 사십 년은 건강하고, 사십 년 후부터 몇 년은 아플 수도 있는 게 운명일 수도 있데요.

또는 그 이후에 삶은 없을 수도 있고, 다시 몇 년 후는 일어나 건강을 잘 찾았다고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고요.


너무 나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제 가신분보단 제가 더 나은 삶인데요. 오늘 눈을 떴으니 순간을 감사하며 살면 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눈을 못 뜨면 어제까지였구나 생각하면 되고요.


욕망이었을까요?

'반드시 나아서 글을 쓰고, 반드시 나아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야지' 했던 모든 생각들은 오히려 나를 헤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간결하게 살고, 순리대로 죽기로요.'


간결하게 살고자 하니 마음이 일단 가벼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에 빠져서 흐느적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오늘은 오늘만큼의 감사와 기쁨으로 살고요. 혹여 예상치 못한 순간이 오더라도 내 의지와 의도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 거니깐요.


비 오는 날  현관에 나가 웅크려 앉았습니다. 가만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빗줄기마다 다른 물길을 찾아 흐르는구나..


그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 마음에도 흐름에 맞는 물길을 터주어야겠다."


지나간 일은 넘겨진 페이지로 넘겨두고,

상처 난 마음에는 일어날 일이었음에 그 시간을 버틴 나를 다독여 주기로 했습니다.

망설여지는 마음에는 물길을 터주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때론 망설임이 고여 썩은 웅덩이를 만들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렇게 마음에도 물고랑을 파주고 나니 두통도 전보다 훨씬 나아지고 컨디션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니는 한의원에서 자꾸 하나님 만날 수도 있겠다고 해서 겁먹었는데 이젠 웃음이 나옵니다. 만나 봬야 할 시간이 되면 만나리라 싶거든요.


가질 수 없는 날들을 욕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갈 수 있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길가에 핀 꽃들을 기쁘게 보며 이 순간을 살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가슴으로 느끼고 내 삶이 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꿈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주어진 만큼의 하루밖에 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요.

누워야 하면 누워있는 시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으면 걷는 걸음만큼만 가는 것이지요.


해가 뜨는 날에는 빨래를 널고, 비가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부치고 살려합니다.


이제는 우산이 없는 날에도 기꺼이 비를 맞으며

웃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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