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보다가 방송인 전원주 씨가 나온 회차를 보게 되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어도 더 오래 살고 싶어"
처음에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런 생각이 들까 싶은 생각이 들어 의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래 사시길 바라는 건, 사실은 곁에 있는 사람들일 수 있겠다.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아빠가 꿈에 나타나셨다. 하루에 네 번씩 울며 깨며 잠이 들었다.
어버이날마다 내려가면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스킨십을 좋아해서 늘 아빠를 꼭 안아드리고 어깨동무나 팔짱을 끼며 손을 잡고 다녔었다. 아빠의 손을 잡으며 갈라지고 거친 손이 내손을 꽉 쥐는 게 느껴졌었다.
그게 사랑의 말이었다.
"사랑한다 내 딸아.."
"오느라 고생했지 공주님"
"너 가면 서운해서 어쩌니?"
그 사랑의 언어가 이제야 해석된다. 그때 좀 더 안아드리고 손잡아 드릴걸..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다 못한 기억만 떠오른다. 이번 어버이날은 아픈 기억에 빠져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했다.
"많이 서운하셨어요?"
"어버이날 전부터 기억하곤 있었는데, 아직 아빠를 다 보내드리지 못해서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내년에는 방긋 웃으며 카네이션 올려 드리고 올게요"
나도 자식을 낳아보니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이다.
북극과 남극은 적도의 끝에서 끝에 있다. 지구는 위도는 하루에 걸쳐 한 바퀴 돈다. 한데 인간은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야 부모도 되고 자식도 될 수 있다. 그러니 한 시대를 거슬러야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부모의 진심은 끝에서 끝으로 오느라 그리 오래 걸리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 살길, 건강하길 바라는 바람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망이고 염원 같다. 그가 떠난 후를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걱정하는 남은 사람들의 욕심말이다.
나는 이제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남은 소중한 사람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려 한다.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자취와 손길이 닿는 곳에 안전함이 함께하길 간절히 빈다. 그들의 눈길에 세상에 고통과 시비가 빗겨나가길 바란다.
적도의 끝에서 끝이라 닿지 않을 사랑이라 해도 상관없다. 흐르다 보면 흘러지는 부분도 있고, 걸러지고 남겨지는 사랑도 있다는 걸 이젠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