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감기에 천리도 못 가서 발병 나는 구신을 붙여 놓은 게 분명하다. 낫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는 게 진상이 따로 없다. 목도 아프고 식은땀과 몸살 기운이 편차를 두고 내 몸 구석구석 관광 중이시다. 언제 갈지 몰라 혼구녕을 내주려고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병원에 사람들이 개미집처럼 가득하다. 잘하면 튕겨나갈 상황인데 기침하는 사람들 타액이 공중부양을 하고 난리이다.
어유,
무시라~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니 옆에 엄마와 아들 말하는 소리가 절로 들린다.
"그래서 고백했어?"
"응. 했지"
"뭐래?"
"그냥 자기 사정이 좀 그렇데.. 내가 싫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서로 입장과 생각이 다르잖아"
"그래서 까인 거야"
"헐, 까인 건 아니지!"
"칫, 그게 까인 거지"
"아니거든. 지금은 못 받아주지만, 내가 계속 좋아해도 된 데거든~"
"넌 쫀심도 없냐. 딱 봐도 어장관리고만"
"아, 몰라. 내 맘이야. 계속 좋아할 거야"
"그래. 네 맘 데로 해라. 지지리 맘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 원래 어른들은 까이고 안 까이고 가 그렇게 중요해?"
"그럼 더 이상 뭐가 중요해?"
"마음에 확신이 들면 정확히 전달하는 거가 중요하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 학창 시절이 되잖아. 내가 정확히 전달했다는 걸 내가 아는 게 중요하지. 내 자존감에도 그렇고. 그럼 드라마처럼 주변 배회만 하다 고백 한번 못해보고 그때 고백할 걸 하고 평생 후회하는 게 나아 "
올~
이 녀석 크게 될 놈이네,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요섭아 사람이 한 백 년 살 것도 아닌데 시간 낭비 같지 않아?"
"그러니깐 더 멋지지. 한 백 년 살면 뭐 해? 고백 한번 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리고 엄마가 그랬잖아. 결과보단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이 휴. 이 시키야. 그건 시험 얘기한 거지"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 내 금쪽같은 새끼 맘 고생하면 속상하지"
"꼭 끝이 그래? 그냥 우리 세대는 그래. 내가 좋으면 좋다. 싫음 싫다. 법을 벗어나는 일도 아니고, 의지에 자유를 주는 게 뭐가 이상해? 어른들은 너무 속박되게 살아. 돌려 말하고, 이익만 따지고, 눈치만 보고. 난 우리 세대 같이 사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휴..(고개를 돌린 아줌마)"
나도 아들이 있지만 내 아들이 저렇게 생각한다면 멋질 거 같다. 나도 집에 천리향을 10년 넘게 키우지만 해마다 향이 나는 건 아니다. 자칫하면 몇 해는 향도 없고 꽃도 못 보고 지나간다. 내가 좋아 키우는 거지 천리향에게 무얼 기대하고 물 주고 잎 닦고 영양제를 주는 게 아니다.
나는 1%만 완벽주의자 성격이다. 그래서 삶에 99%를 뇌를 안 쓰고 산다. 중요한 일 한 가지에 모든 정신을 쏟기 때문에 글을 써도 맞춤법도 다 틀리고, 가끔 옷도 거꾸로 입고 나가고, 요리도 대충대충 한다. 그래서 삶에 대부분은 엄청 덜렁거리고 실수투성이인 삶이다. 근데 나는 이런 내 성격이 편하고 좋다. 부딪히고 싸워봐야 내 맘고생이 더 크고, 이겼다한들 달라질 게 없다. 모든 인간은 기질과 성장과정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고만 살면 된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렇다.
"미완성이 좋아지고 있다"
모든 것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된다.
"전시회를 갔는데 캔버스에 그리다 만 그림이 있으면 난 흥미로울 거 같다. 그다음은 뭘 그리려고 했을까? 아님 나라면 마지막 붓칠에 이어 어떤 선으로 연결했을까?"
이게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예술과 마음은 등호관계를 성립한다. 언제든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비가 올 수도 있다. 가끔 붓통물에 캔버스가 찢어질 수도 있는 이런 우연들이 모아져 삶이 되고 마음과 캔버스가 된다.
그러니 나는 소년을 거절한 소녀도 이유가 있겠고, 그래도 결과와 상관없이 소녀를 좋아하겠다는 소년도 응원한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랑 중에 이루어진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소년의 mz세대 사랑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나저나 사람이 줄어들질 않는다.
얼른 주사 맞고 가야 애기 하교시간에 맞춰 붕어빵을 사갈 수 있는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