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저녁 공원 빈 의자에 앉아 있고 싶네요. 살짝 생경하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갑자기 가족회의를 소집했어요.
"엄마 나 학교를 다녀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
"난 학교가 학교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교육이 이루어지고 친구들이 즐거운 곳. 근데 지금 학교는 무정부 시대이고, 서열 폭력판이야. 선생님들은 힘이 없고, 선생님 말은 전혀 듣지도 않아. 아이들은 힘센 애 말만 듣고 그 힘센 애랑 부딪히면 모두 모른척해"
"방관자가 된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래. 방관이 학폭을 악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
"근데 엄마아빠가 널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네가 하도 친구들을 좋아하고 청소년기에 추억을 쌓으라는 이유에서잖아. 그래서 전혀 성적 터치 안 하고"
"엄마 말이 맞아. 내가 친구들을 엄청 좋아하고 청소년기 추억을 쌓고 싶어. 근데 그곳은 학교일 때지. 투견장에서는 아니란 거지"
"내가 자퇴한다고 친구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닌 곳에서 몸도 힘든데 죽을힘으로 버티고 싶지 않아"
"흠. 엄만 둘다의 가능성을 인정해. 학교 안에 있을 때의 프레임은 강제지만, 학교밖의 프레임은 온전히 자기주도학습이야. 엄마는 지금도 학원을 안 가는 너를 기숙학교 같은 곳에 보내서 강제로 감옥처럼 살게 못해. 넌 아직 정서적으로 아가야"
"나도 싫어. 기숙학원 이런 데는 진짜 싫어. 일단은 외대랑 사학과, 언어 위주로 생각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깐 게임을 접고 몰입해야지. 게임은 커서해도 늦지 않잖아. 난 검정고시 만점 받아서 원하는 대학 들어가고 싶어"
"시간 낭비 안 하고.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아이들하고 선생님하고 하루종일 싸우는 곳에서 뭘 배워"
"학교를 그냥 다니는 애들도 있어. 왔소 갔소하며. 너도 좀 이러면 어때?"
"응. 난 그게 안돼. 난 늘 집중할게 필요해. 난 쉬는 시간에도 프랑스어나 중국어를 외워. 내가 재밌으니깐. 그럼 친구들도 뭐 하냐고 물으면 내가 불어로 말하면 아이들도 관심 가져서 같이 배우고 대화도 가능해지고 좋잖아. 난 의미 없이 보내는 게 싫어. 좋아하는 걸 하게 내버려 두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학교는 쉼표도 없고 진도도 못 나가. 애들이 막 밖에 나가고, 화장실 가고, 물먹고, 지맘 데로 가방 가지고 나가버리는데 무슨 수업을 해. 선생님들 눈동자에 영혼이 없어. 다들 살아계신 게 맞나 싶어"
"아빠는 네가 일단 중학교라도 졸업하고 그다음에 선택했으면 좋겠는데.. 네가 검정고시 따는 거 아빠도 좋아. 잘할 거니깐. 근데 엄마 말대로 생각보다 외로운 길이고 많이 인내해야 할 거야"
"난 꼭 중 졸업장을 따야 한다고 생각 안 해. 이미 지금까지의 성적이나 생활통지표도 최고이고. 지금처럼 몸이 힘들어 정신과에서 쇼크진단 나왔을 때 쉬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단 이번주는 집에서 쉬면서 그만두면 어떻게 살지를 찾아보고 계획도 세워보고, 또 다음 주 일주일은 등교를 해봐. 등교를 해봤더니 맘이 바뀔 수도 있잖아. 엄마 아빠는 전적으로 니 선택을 지지해. "
"타당성이 있는 이유고. 우리는 너의 가능성과 자질을 믿으니깐. 삶이 후회 없는 삶이 없어. 길이 처음부터 길이 아니었던 거처럼. 그러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장단점이 있다는 것과, 네가 가는 길이 곧 너의 길이 된다는 거만 알아둬. 그리고 니 뒤엔 항상 부모님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지금 너의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이 놓였네. 잘 선택해 보길 바라"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자기 주관이 있고,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태도에서, 기특하네"
"응. 엄마 말대로 이번주는 잘 알아보고, 담주는 학교 가볼게"
대화가 끝나니 마음이 멍하고 정신이 정지되네요. 잠시 약을 한봉 먹고 생각해 보니 말이 씨가 되었나 싶고.
남편이 아플 때 비상약하고 영양제랑 챙겨줬더니 처방 잘한다고 약사나 되라는 거예요. 그때 잠깐.
"약대나 가볼까?"
싶었지요. 그래서 아이 수능 맞춰서 내년부터 미리 나 먼저 수능을 재미 삼아 봐보려 했어요. 트렌드도 보고 이쁜 애기들도 보고요. 그랬더니. 진짜 아들 공부 갈키게 생겼습니다. 궁서체로요.
아이만 하겠다면 뭘 못해주겠냐만은 아이가 헤쳐나갈 새길이 염려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담주는 정말 학교에 학부모 상담을 갈 거 같습니다. 매일 새로운 길이 열리고 닫히는 세상이네요.
부디 네가 가는 길이 곧 길이길 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