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정신과 검사를 듣고 왔어요
수달 가족의 해풍소
저번주 금요일 아들의 정신과 결과를 듣고 왔어요. 생각했던 거 보단 아날로그 병원이어서 진짜 놀랐어요. 선생님도 사십대로 보이는데 페이퍼를 상당히 많이 쓰는 병원이더라고요. 심적으로는 굉장히
긴장하며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누구? 어머니신가요?"
"네"
"아, 저번에는 아버님이랑 와가지고요. 어머님도 계시는구나"
"엥.. 뭐지 이선생님@@;"
"요즘은 어머니 계신 집에서 아버님이 오시진 않으셔서요"
"아, 저흰 둘 다 아들한테 관심이 많습니다"
"어.. 그래 학교는 좀 가봤니?"
"네. 화요일부터 정상등교 했어요"
"응. 그래 다행이다. 애들은 어떠니? 일진들이 너나 네 친구들 건드리디?"
"아뇨. 개들은 조용히 있더라고요. 제 친구들도 괜찮았고요"
"응. 그래. 근데 네가 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예의도 발라야 하고, 공부시간에는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고,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되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그러지?"
"어....... 쪼금 그런 거 같아요"
"그래. 근데 그게 일진들이 제일 싫어하는 애들이야"
"일진들하고 친해져서 힘센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어야 해. 오히려 하수로 부리면 편한데 적으로 두면 이제 이게 일이 되거든. 그래서 피해자가 참다 한 번 욱하고 치면 가해자가 돼서 학폭 열리는 경우도 많아. 되도록 회장 이런 거나 학교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도 좋고"
"이게 상담이 점점 산으로 흘러가는 거 같아서 고구마를 먹는 심정으로 참고 있었어요."
"선생님 그럼 검사결과는 어떤가요? 청소년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이런 건가요?"(난 적어도 이때 검사결과지를 보여줄지 알았다)
"아뇨. 그런 증상은 없는데, 그냥 스트레스 쇼크 이런 거죠"
"그럼 약을 계속 먹어야 하나요?"
"음~
에~
우리가 암이 아니어도 감기여도 약을 먹듯이 놀랐으니깐 한 사주정도는 먹어보죠"
"그럼 약을 주마다 말고 좀 루즈하게 주실 수 있을까요?"
"음,
아,
그건,
예,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 보시죠"
"네 에.."
"요즘도 운동 다니니?"
"네. 무에타이요"
"그건 격술이라 안된다니깐. 격술은 공격의주잖아. 유슬은 합기도 주짓수 같은 거 해서 방어만 하는 기술을 익혀야 해요"
"우리 아들은 합기도, 주짓수 다 했다니깐.."
"괜히 한 대 때리고 가해자 되면 안 되잖니"
"넌 군인 하면 잘하겠다. 공군, 육군, 해군 중에 뭐가 제일 좋니?"
"아..... 네... 공군이요?"
"그래. 성격이 차분하고 정확해서 공군 하면 좋겠다. 요즘은 사관학교 말고도 군 장교 쪽으로 갈 방향이 많아. 그러니 그쪽도 잘 알아보고. 넌 군인체질이 딱이다"
"난 점점 상담이 산으로 간다 생각하고 목이 말랐어요"
"그럼 선생님 가보겠습니다"
"네. 유슬하시고요"
뭐지! 내가 가본 세 번째 정신병원인데 셋다 다르구나. 암튼 쫌 그랬다. 그 비싼 검사를 했는데 결과지도 안 주고 설명도 없고..
일층에 내려오니 마카롱가게가 있었다. 그래서 마카롱을 듬뿍 사서 아들 손에 쥐어줬다, 아들이 고기 먹을 때보다 눈이 커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넌 여기 병원 어때? 맘에 안 들면 옮길까?"
"아냐. 난 오히려 괜찮아"
"진료 방법도 되게 낡았고, 상담도 미적근하고, 니 미래를 왜 권장해? 너 군인 할 거야? "
"아니, 그냥 맞장구 쳐주는 거지. 뭘 신경 써. 난 오히려 너무 신식이 아닌 게 좋아. 의사 선생님도 약간 쫌 정적이고 거북이 같고. ㅋㅋ"
"그려. 네 맘에 들면 됐지. 병도 없다는데 이 약 먹고 나으면 그만 다닐 테니깐"
"응"
엄청 많은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해당 없다와 완벽주의 성향이다가 다였어요. 조금 답답하긴 했는데 순간 검사결과지를 달라고 안 한 게 후회되더라고요. 받아와서 내가 보는 건데..
이번주에 또가니 그땐 검사결과지를 꼭 받아와야겠어요. 그래도 아들이 안 아픈 거는 참 감사할 일입니다. 아들까지 아프면 세 식구 다 아픈 거거든요. 엄마는 공황, 불안, 우울증 / 아빠는 우울. 조울증..
가만히 보면 남편은 본가 모두가 조울증 같아요. 밥 먹다가도 놀라고 체하기 쉽죠. 그래서 모두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에요. 조울증도 약을 먹으니 일반인과 비슷해지더라고요. 이제는 남편 때문에 불안해하진 않습니다. 사람이 많이 평온해졌거든요.
현대병일수록 빠르게 지각하고 개입하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늘 그랬는데 결혼하고 15년 만에 치료를 시작했어요. 이제 반년 조금 안 됐는데 효과가 좋습니다. 조금만 일찍 했어도 제가 덜 아플 수도 있었는데.. 그땐 적극 개입 못하고 본인이 싫다니깐 배려라고 참고 산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본인이 더 편안해합니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안 하고 비관적이지 않고 즉흥적이지도 않아졌거든요.
아파도 돼요. 됩니다.
다만 치료를 해야 합니다.
문제는 질병을 질병으로 보고 치료를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지요!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