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빈아~
잘 지내고 있어?
니 생각은 많이 나는데 그동안 편지를 못썼어,
혹시 기다렸어? 넌 팬이 많으니 매일 편지 받았지?
요즘 니 후배들이 많이 나왔다.
난 근데 왠지 아이돌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슬프고, 아프고, 염려 돼.
아마 니 생각이 나서 그런가 봐.
그 화려함 뒤에 참고 견뎠을 너와 같은 고통이 아프고, 그 고통에 인계점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던 너처럼 될까 봐 염려되는 거 같아.
그래서 난 화려한 직업에 아이들을 보는 게 어려워. 아무래도 보편적으로 나이마다 보이는 세상이 다르거든.
성실함이란 게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자나.
근데 넌 그걸 해냈으니, 너처럼 보석 같은 사람이 나이별로 볼 수 있는 세상의 진가를 못 보고 간 게 참 안타까운 거지.
내가 너보다 누나잖아..ㅎㅎ
난 나 보다 나이 든 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십 대에 봤던 세상과 지금 보는 세상은 몇 배로 다르거든. 이해의 크기도 해석의 방향도.
근데 오십 대가 되면, 육십 대가 되면 얼마나 다른 세상이 보일 거야? 안 그래?
인간은 같은 시간을 살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거든. 같은 현상을 보고도 이해의 깊이와 해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
요즘 난 나이 든다는 게 멋진 가을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거 알아?
잘 산 어른들의 인생은 꼭 나무 같다.
푸르다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낙엽이 되어 겨울을 맞이하는 삶 말이야.
물론 모든 사람이 나무같이 멋지게 물들 순 없어. 그래서 세상에 밑면이 다 나무 그늘 같이 시원한 안식처가 아닌 거겠지.
나무로 살다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그래서 잘 나이 든다는 게 멋지고 소중한 인생인거지.
난 네가 있었다면 참 멋진 고목이 될 수 있었을 거 같아.
빈아!
난 언제쯤 니가 생각나도 아프지 않고 웃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 너의 마지막 마음이 어땠을지!
얼마나 참았길래, 삶이 압축되어 소멸된 건지.
꽤도 부리고 대충 살지 그랬냐고 너한테 너무 말해주고 싶은데. 내가 너무 늦었어... 미안해!
네가 화려한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넌 여기서 나랑 같은 공기를 마시고 평범한 청년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자꾸 들어.
나의 시간이 자꾸 너의 시간으로 뒤 돌아 가.
아마 니가 남긴 나침반 한 조각이 나에게 도착했기 때문인가 봐. 네가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줄게.
니가 못 본 세상을 내가 더 보고 니 멈춘 나침반의 시간을 더 쌓아서 말이야.
그러니 거기선 오직 너로만 살아!
누구의 그 무엇도 되지 말고,
애쓰지 말고, 참지 말고
너만 생각해.
또 편지할게.
잘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