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가? 아님 힘이 없어서 그런가? 요즘은 해결되는 일보다 인내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최근에 꿀떡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일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 아이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자 학교폭력전담부장 선생님이다.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아시고 그날밤에 너무 속상하셔서 술을 드시고 주무셨다고 다음날 내게 전화를 했다.
요즘 학교는 1학기 회장, 2학기 회장을 두 번 선출해서 뽑게 되어 있다. 우리 아이는 1학년 1학기때 회장이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학교 규칙을 어기고 우리 아이에게 2학기 회장도 맡아줄 것을 부탁하셨다. 그때 아이는 학교일을 하는 게 너무 많아서 회장이라도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아들 덕분에 학교봉사 갈 일이 참 많았다. 당연히 선생님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은 생기부를 무척 잘 써주셨다. 나는 학교와 선생님께 감사함에 2학년에도 학교 봉사를 열심히 하고 늘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믿었었다.
분명히 우리 아이가 학교 폭력을 당하게 된 이유는 같이 노는 친구 8명을 지키다가 대상이 된 케이스이다. 한마디로 AB군 2명이 먼저 오래 당하다가 우리 아이에게 까지 온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 같이 피해를 당했고 우리 아이까지 셋이 같이 사과를 받으면 이번은 넘어가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던 며칠 전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가해자 측에서 사과를 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내일 부모동반으로 1시에 학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AB군 친구도 같이 사과받는 거죠?"
"아뇨. 어머니 제가 A와 B를 상담했는데요. 친구들 둘 다 그 아이들과 대화해 본 적도 없고, 학교 폭력 당한 사실도 없다는데요!"
헐, 순간 머리를 씨게 맞은 거 같았다. 피해를 당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사과는 안 받겠다고 하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하니 나와 우리 아이는 배신당한 기분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A는 그럴 아이가 아닌데 이상했다. 나는 그 아이 아버님께 30분 동안 혼도 났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니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B군은 그럴 거 같았다. 부모님은 가학적으로 허용이 없는 분들이셨다. 아이에게 이 소식을 말했더니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에 힘들어했다. 그때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애기야 그래도 진실을 알아야 하지 않겠어?"
"선생님 말만 듣고 친구를 오해할 수도 있잖아? 선생님 말이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데 양쪽 말을 들어보고 실망을 해도 해야지?"
"알겠어. 내가 전화해 볼게"
"엄마 A는 피해사실 다 얘기했데, 사과만 안 받는다고 했데. 자기네 아빠가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사과받아도 자긴 좋다고 그러네. 그리고 B는 학교 끝나면 폰을 아빠한테 뺏겨서 물어볼 방법이 없어"
"응. 그래.. 어쨌든 친구들 그냥 잃을 뻔했는데 잘됐다. 그래서 양쪽 말을 들어봐야 해. 너네 1학년 선생님도 할 수 없는 선생님인가 보다. 일이 커질까 봐 축소시키려고 그러신 거 같네. 애기야 서운하겠지만 인간은 다 자신의 입장이 먼저야. 네가 이해해라"
"휴.. 알겠어"
나는 아이방에서 나왔는데 열통이 터져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어제 아이가 A 이한테 물어봤거든요. 선생님께 진짜 그렇게 말씀드렸냐고.. 아니라는데요. A도 피해당한 거 다 말씀드렸다는데요. 사과는 안 받겠다고 했지만 폭력 당한 거는 진술했다고 말했답니다. 어떤 말이 맞는 건지 난감하네요. 선생님 말씀을 믿으면 제 아들이 친구에 대한 상처를 받고, A이 말을 들으면 아이가 어른과 학교 사회에 대한 불신을 경험하는 거니깐요..?"
선생님께 바로 전화가 왔다.
"아, 어머니 제가 그랬나요? 전 기억이 없는데 제가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A는 다 당한 거 진술했고요. B는 안 당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요즘 바빠서 B와 A를 헷갈렸습니다."
휴.. 속상했다. 아니 지금도 속상하다. 난 굉장히 믿었던 선생님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헷갈렸다로 얼버무리는 모습이 더 실망스러웠다. 그냥 자신이 입장이 많이 곤란해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하면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마치 학교폭력 가해자 같은 변명을 하시니 같은 어른으로써 창피했다.
어제는 누가 띵동 하길래 나가보니 문 앞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건 아들친구 B가 놓고 간 편지였다. 이 학교폭력이 시작된 계기도 B가 일진들에게 공부 못한다고 지적해서 무리가 다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던 거였다. 근데 이 친구가 며칠 전에 우리 아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또 했다.
"야. y는 학교 왜 않나 와?"
"너희 일진 새끼들 때문에 않나 오는 거잖아. 니들만 꺼지면 y는 당장 나오거든. 너네는 공부도 못하는 게 반점수나 깎아 먹으면서 나오고, 반 살리는 A는 못 나오게 해"
우리 아이는 자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걸 수치스럽고 창피해했다. 자기가 폭력을 당했다는 거에 대해서 완전 비밀이었다. 그래서 절친 몇 명에게만 말했었다. 근데 이 친구가 그걸 반전체에 발설한 거다. 그 소식을 듣고 아들은 굉장히 화가 많이 났었다. 그 이후로는 워낙 B가 폰도 없고 연락이 안 되니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몰랐었다. 근데 알고 보니 그날 저녁 아들은 A를 통해 B에게 절교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편지에는 사과의 글과 절교를 취소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부탁이었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계속 생각 중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사회를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난 B가 왠지 짠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세상도 어른들에 세상도 베베 꼬여 있다.
그냥 없는 말을 할 바에는 말을 안 하고, 안 할 말 좀 안 하고, 나만이기보다는 서로 일 수 있는 방향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내일 사과받으러 학교를 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 상대편 아이들을 곱게 볼 자신도 없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사실 내 살을 깎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세상을 보고 선택하는 방법을 계속 가르쳐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