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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년 기록

사람 일은 참 모른다

오늘을 씁니다

by 이음

어제는 재활용을 버리는 날이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좀 힘이 나서 아들과 살금살금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


그때 위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내려왔다.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횡설수설하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할아버지가 치매 걸리셔서 외부활동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70이 넘으셨어도 아침 수영도 다니시고, 산도 다니시고, 동네 언니들하고 차 타고 다니시며 즐겁게 사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 집에서 못 나오시니 병이 나신 게다.


가을까지만 해도 두 분이 자전거 타고 운동도 가고, 장도 봤고 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밤 12시에 오시는 곤란했다. 난 아프다고 계속해서 얘기했지만 할머니께선 하소연할 사람이 그리우신 거 같았다. 들어 오시래도 자꾸 현관 밖에서 말씀하셔서 오한이 들었다.


오늘은 출근하는 남편을 잡고 일층에서 또 십분 넘게 말하고 계셨다. 어제 출퇴근 시간을 물어보시더니 이래 서였나 보다.


진짜 일층에서 기다리신 거면 정말 큰일이다.

할머니도 많이 아프시다는 말 아닌가?


할머니는 불안해서 매일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셨는데 귀는 소머즈 귀였다.

가만히 귀를 바닥에 대고 있다가 집이네 집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길래 내려오셨다고 했다.


휴~

나도 짠한데 두 분도 많이 짠했다. 간병인이 어디 보통 일인가? 젊은 사람들도 힘든데 70대가 넘은 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게다.


바깥분을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자식들 눈치가 보이는 듯 보였다. 그래서 굉장한 불안과 긴장, 강박 비슷한 것들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울증의 또 다른 양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노인 치매 의료비는 국가가 전액 지원해 주는지 알았는데 월 50만 원은 자기 부담금이라고 해서 놀랐다. 할머니 남편분께서 저렇게 몇 년을 사시면 그 병원비와 어르신의 남은 노후비이니 모자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모든 감각을 각성시킨 게다!


이래 아픈 나지만 그분 앞에선 들어 드릴 수 있는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그러니 밤 12시에 얘기하고 싶어 찾아오시고, 출근시간 맞춰 기다리시는 게 아닐까..?



아, 답답하다. 다치시는 게 계속되면 안 되는데 도와 드릴방법이 전혀 없다. 그분은 항상 자식자랑을 입이 마르게 하셨는데 자식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으실 테다.


휴, 나나 잘하자 나나

내가 누굴 걱정할 입장인가..?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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