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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년 기록

컨디션이 좋다

오늘을 씁니다

by 이음

그제는 한의원을 다녀왔는데 절망적인 얘기만 듣고 왔다. 나 같은 증상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고 평도 좋은 곳이었는데 말이다. 여러 검사를 했는데 이대로 두면 많이 살아도 6개월에서 1년 산다고 하셨다.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고 하시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길에서도 뇌경색이나 심장마비로 쓰러질 수 있다고 하시니 웃음만 나왔다.


내 느낌에도 오래 살기는 힘들 거처럼 느껴졌었다. 선생님은 진맥을 잡고 아픈 곳도 족집게처럼 잘 맞추셔서 약간은 진짜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최소 한약을 1년은 먹으라고 하는데 금액도 어마어마하고 치료 기간도 1년이 최소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나처럼 백신을 맞고 심장이 망가져서 오시는 환자들이 많다고 하니 포기하기도 어렵고 망설여졌다. 내 검사결과를 봤는데 내 심장은 벌써 98% 정도가 다 사용하였다.


흐흐흐..

웃음만 나온다.

이게 진짜 신기한 게 자율신경, 부교감신경, 교감신경 검사도 했는데 거의 신경 활동이 측정되지 않았다. 심장이 망가져서 신경이 다 녹아버린 것이라고 하셨다.

장기 나이까지 볼 수 있었는데 내 장기 나이가 50대로 나왔다. 선생님은 내가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하셨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됐었다.


선생님은 나를 살릴 수는 있다고 하셨다. 장기전으로 꾸준히 치료하면 말이다.


단 지금부터 다 죽은 몸이니 일어나지도 말고, 책을 읽지 말고, 티브이나 핸드폰도 하지 말고. 무조건 사용금지, 사용금지 무조건 절대 휴식만을 강요하셨다. 어떻게 천장만 보고 살라는 건지..


어제는 그동안 지켜본 결과 혈압이 심상치 않길래 다니던 내과를 다녀왔다. 혈압이 작년부터 서서히 오르는가 싶었는데 그제는 187 , 어제는 192였다. 안 되겠기에 내과를 갔더니 선생님이 깜짝 놀라신다. 작년 1월 마지막 내원 혈압이 110이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셨다. 너무 높아서 위험하다고 당장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휴..

혈압 당뇨는 자신 있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무너졌다. 수동으로 측정해 보시고 청진도해보시고 안 되겠다고 약을 3일 치 처방해 주셨다. 자주 체크하며 떨어트리자며, 한꺼번에 많이 떨어트리면 어지럽고 쓰러진다고 하셨다. 어제 낮부터 혈압약을 먹으니 차츰 혈압이 내려가더니 스르르 잠이 왔다. 불면증이 삼사 일씩 가서 그거 때문에 혈압이 놓아졌을 수 있다고 하셨다. 수면제도 처방해 주셨다. 정신과에서 그렇게 안 주시던 수면제를 내과에서 처방해 주셨다.


"아니 잠을 이렇게 심각하게 못 자는데 왜 약을 안 주는 거예요"


"아마.. 수면제 부작용이 있어서 자살하고 그럴까 봐 안 주시는 거 같아요. 선생님"


"아니 잠을 못 자면 자살을 더하지. 장기 다 망가지고.. 혈압이 당장 심정지 올 수 있는 혈압인데.. 뇌로 가면 뇌경색.. 이거 심각한 거라고. 이렇게 혈압 200 넘고 이러면 위험해"

"됐고. 나도 못 잔다고. 나 먹는 수면제 드셔보셔. 반알 먹어보고 20분 안에 잠 안 오면 반알 더 먹고. 원래 한알짜리니깐"


"자 같이 갑시다. 약국"

"네"


나는 선생님을 따라 처방전을 갖고 약국으로 따라갔다. 선생님은 당장 몇 개를 먹고 가라고 기다리셨다. 급한약은 약국에서 먹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다시 재보니 혈압이 150까지 떨어져 있었다.

잠이 스르르 오길래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저녁을 먹었다. 다시 저녁 약을 먹고 혈압을 재보니 120까지 내려왔다.


갑자기 혈압이 80 정도 떨어지니 일어설 수가 없이. 어지럽고 몸이 물미역처럼 축축 뻗어 흐물거렸다. 다시 혈압을 올려야 할거 같아서 내가 말했다.


"애기야 혈압 오르는 방송 좀 틀어봐."


"알았어.."


뭘 켜놨봤더니 '나는 신이다. JMS 정명석' 편을 틀어놨다. 보다 보니 기가 막혀서 진짜 혈압이 다시 오르는 듯했다.


오늘은 아침 혈압약을 먹고 혈압이 150나왔다. 이 정도만 돼도 머리도 반은 맑고, 몸도 좀 움직이겠고, 숨도 좀 덜 차고, 훨씬 살 거 같다. 잠을 잘 자면 혈압이 내려온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맞는 말인 거 같다. 그나저나 잠이 부족해서 더 자고 싶은데 더는 잠이 오질 않는다.


어제도 졸피뎀을 반알 먹고 소용이 없어서 또 반알 먹었는데도 소용없었다. 결국 누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세 시간 만에 잠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잔 잠도 세 시간밖에 못 잤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고혈압약 덕분에 조금은 살 거 같다. 기분도 좋고 마음도 좋다.


그나저나 한의사님 말씀이 마음에 걸린다.

백신이 심장을 치고 들어가 신경들을 다 태운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장기가 다 녹았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끔찍하고 무서운 말이다. 어쩐지 얼마 안 가 죽을 거 같더니 내 예감이 돌파리는 아니었나 보다. 몸은 거의 죽어서 약힘으로 눈을 뜨고 있는 거니 살려고 하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살려는 의지는 어떻게 내는 건가?

난 매우 무기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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