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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년 기록

어지럽지 않은 내일아, 어서 와줘

오늘을 씁니다

by 이음

휴, 여름 나기가 이렇게 힘든 계절이었나.
6월부터 다시 무에타이를 시작했다. 정신과 약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고, 나름 긍정적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괜찮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은은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었는데, 7월 둘째 주, 예상하지 못한 고비가 찾아왔다.

편두통과는 다른 종류의 두통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운동을 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고, 하루하루가 자꾸 흐릿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7월 12일 토요일 새벽.
세상이 휘청이며 나를 삼켜버릴 듯한 어지럼증이 덮쳤다. 그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더니 분수처럼 토하기 시작하고,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 구급대원은 나를 업고 응급실로 향했다.

백석 병원 응급실.
“어지럼증으로 왔어요.”
겨우 말을 꺼냈지만,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머리도 시트도 이미 엉망이었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바쁘게 내 곁을 오갔다.
급히 MRI를 찍었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뇌경색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수액을 맞으며 위장과 어지럼증은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중증 상태였다.

7월 23일, 신경과 외래 예약을 잡았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7월 14일, 어지럼증 클리닉을 운영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석증 검사부터 자율신경, 청력, 시야, 전정기관 검사까지 받았는데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석이 빠졌다가 자연스럽게 돌아갔을 수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었다. 그래도 증상이 워낙 심했기에 후유증은 남을 수 있다고 했다.

진료는 네 시간이나 걸렸다.
이석의 원리, 응급실 상황, 그리고 최근 의료 사태에 대한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말씀하셨다. 여러 대학병원의 외래교수님이셨는데 그래서 그런가 말씀이 참 길었다. 진료 중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윤석열 정부가 의료 파업 직전 무장경찰을 대학병원에 배치하고, 명령 불응 시 강제구인, 강제최고집행까지 거론했다는 얘기였다. 의료인들의 억울함에 대해서도 열분하며 설명해 주셨다.

참 이상한 건,
이 모든 일이 내가 보건소에 가서 연명치료 거부에 서명하고 장기기증 전 항목 동의를 하고 돌아온 그날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건 우연이었을까?
마치 나에게 선경지명이라도 있는 건가...
혼자 중얼거리며 MRI 기계 안에서 생각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이 고통을 안고 오랜 투병 끝에 가는 건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오른쪽으로 눕기만 하면, 롤리팝 사탕처럼 정신이 한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속도 울렁거린다.

“후유증은 사람마다 달라요.”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이석 부스러기가 림프액에서 빨리 녹으면 금방 회복되지만, 부스러기가 많으면 오래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엔 내가 겪어보지 않은 병이 참 많구나"


근데 그 어떤 병도 나는 궁금하지가 않다. 노화라는 시계가 내게 자꾸 낯선 질병을 소개해주지만 나는 강력히 거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몸의 부속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일 같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기들이 고장 나고, 자르고 붙이며 수리해 나가는 일이 노화같다.

내 나이가 벌써 이럴 나이인가 싶은 마음이 들고.
건강하고 지칠 줄 모르던 젊은 시절이 너무 그립다.

이석증으로 결국 무에타이도 그만두게 되었고 이젠 무얼 도전하기가 망설여진다.

그저 바라는 건 하나.
편하게 눕고 싶은 것이다.

편히 눕는다는 것. 그 단순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엄청난 축복이었는지, 요즘 들어 자주 깨닫는다.

어지럽지 않은 내일이 오면 그 뒤에 또 뭐가 있을까.


"노화의 시계야 거꾸로 가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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