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의 하루
정오가 훌쩍 지났는데도 햇살이 따갑다.
탑골공원 벤치 하나에 교복 입은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다. 마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등을 둥글게 말고, 그림자처럼 웅크린 채.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김영감님이 천천히 다가간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분이었다.
걸음은 느리지만, 눈빛은 여전히 선생님이다.
“무슨 일 있니?”
영감님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따뜻하다.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대답도 없다. 김영감님은 잠시 아이 곁에 가만히 앉는다. 말 대신, 시간이 말을 대신해 주기를 기다린다. 한참이 지난 뒤, 아이의 어깨를 살짝 토닥인다. 그제야 아이가 입을 연다.
“할아버지, 왜 살아야 해요?”
목소리는 작고, 땅속으로 꺼져 들어갈 듯했고, 말끝에는 깊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김영감님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낸다.
“글쎄… 나도 한때 그런 질문을 자주 했지.
근데 말이야, 삶이란 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더라. 가끔은… 그냥 하루를 견디는 게 전부일 때도 있어.”
아이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그러곤 낮게 털어놓는다.
“전… 중3인데요. 아침 6시에 등교하고,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어요. 그리곤 새벽 3시까지 숙제를 해요.
벌써 고3 선행 수업을 해요. 자는 시간은 두 시간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도 없어요. 근데 부모님은 그게 당연하대요. 숨이 막혀요 할아버지.”
한동안 말이 끊겼다.
그제야 김영감님이 주변을 가리킨다.
공원 어귀에선 누군가 고스톱을 치고, 장기판 위엔 검은 돌 하나가 천천히 놓인다. 혼자 조용히 산책하는 노인, 나무를 쓰다듬는 이, 벤치에서 신문 보는 사람들…
그 풍경을 따라가며 김영감님이 말한다.
“저 사람들 보이지? 다들 누군가의 아버지고, 어머니고, 자식이었을 거야. 어떤 날은 아파서 멈추기도 했고, 어떤 날은 도망치기도 했지. 근데 결국… 여길 찾아왔어. 하루만큼은, 자기 속도로 숨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거든.”
아이의 눈에 물기가 맺힌다.
김영감님이 조용히 말한다.
“너, 오늘 조퇴한 거지? 잘했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어. 그냥 벤치에 앉아 햇빛만 봐도 되는 날.”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의 등을 다독인다.
햇살이 살짝 누그러진다.
두 그림자가 벤치 옆으로 길게 나란히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