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탑골공원의 하루

by 이음

겨울방학이 시작된 둘째 주, 오전 10시. 탑골공원 안 벤치에는 오늘도 안영감이 나와 있었다. 언 발을 어기적 거리며 비둘기를 쫓고 있던 그에게, 누군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안영감님, 아직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급식복 안에 패딩을 껴입은 중년 여인이 뜨뜻한 물이 담긴 텀블러를 내밀며 말을 건넸다.


안영감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응, 은희네 아니여?”


"네, 희망초 급식실 은희네요. 어르신요."

은희 씨는 안영감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뻣뻣하게 굳은 할아버지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안영감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허… 나도 은희네 같은 며느리 하나 있음 참 좋겠네.”


“아이구. 저도 어르신 같은 시아버님 계시면 참 좋겠어요.”

둘은 동시에 웃었다. 은희 씨는 13년째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이다. 방학이 되면 ‘자동 무급휴직자’가 되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주머니들은 방학이면 쉬어서 좋겠네요”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농담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학 한 달 동안 월급은 빵원이지만, 식비, 전기세, 관리비는 그대로 나온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녀에겐 이 돈도 매우 큰돈이다. 가끔 방학에 ‘알바’를 하기도 하지만 나이도 많은지라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가 더 많다.


“영감님 자녀 분은 잘 지내세요?”


“글쎄.. 용돈도 없고 연락도 없고, 뭐 그렇지.”

안영감은 기침을 하며 말끝을 흐린다.


은희 씨는 핫팩을 그의 주머니에 몰래 쑤셔 넣는다.

“아유, 저희 아들도 연락 없긴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남이 챙겨드리는 것보단, 가족이 낫잖아요.”


그 말에 안영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은희 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급식실 단톡이었다. 다음 학기 계약 갱신 떴다. 그녀는 손을 떨며 카카오톡을 열었다.

‘2025년 1학기 조리실무사 계약 대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은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쉰다.

다행이다…”

“오늘 점심은 드셨어요?”


“안 먹었지?”


은희 씨는 가방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낸다. 학교에서 남은 식재료로 조리한 반찬들로 쌌다.

"급식실 거지만, 나름 영양표를 참고한 거예요."


“그럼 뭐, 국가공인 도시락이겠구먼!”

둘은 허허 웃는다.


그날, 둘은 공원 벤치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은희 씨는 이따 탑골공원 경로식당에서도 봉사할 예정이란다.


“이따 들리세요. 오늘 메뉴는 황태해장국이에요.”


“그래? 그럼 안 가면 나만 손해네.”


은희 씨가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영감님. 가족은… 꼭 피로 맺어야 되는 거 아니죠.”


그리고 그녀는 다정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말>

학교 비정규직 조리사 6만여 명 중 다수는 방학 동안 무급휴직에 놓입니다. ‘쉰다’는 말은 ‘생활이 중단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한 끼를 책임지는 분들이 자신의 하루를 굶는 현실.

‘노동의 가치’는 정규직 여부로 나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일터를 잃고, 누군가는 가족을 대신하고, 누군가는 다시 일어섭니다. 삶은 오늘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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