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의 하루
“어르신, 혹시 김상구 영감님 못 보셨어요?”
공원 한복판, 장기판 앞에 모여 있던 노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의 물음에 웅성임이 일었다.
“오늘도 안 나오셨나?”
“어제도 안 나왔어.”
“감색 배렛모를 쓰시고, 하얀 티셔츠에 군청색 바지. 허리 꼿꼿이 펴고 다니시던 분.”
“아, 그 영감님? 장기 둘 때마다 꼭 ‘초 차례요’ 하시던 양반!”
사람들은 금세 알아보았다. 탑골공원은 그렇게 작은 동네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화제를 나누는 이들에겐, 단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바로 ‘사라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김상구 영감님은 올해 79세였다.
군복무를 마친 뒤 평생을 도심버스 운전기사로 일했고,
정년 후에는 오로지 탑골공원에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감기라도 걸리셨나?”, “자식들 집에 가셨나?” 하며 넘기려 했지만, 그날 아침, 공원 게시판에 붙은 한 장의 전단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실종 안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찾습니다.
이름: 김상구 (79세)
실종일: 어제 오후 3시경
마지막 착의: 감색 배렛모, 흰 티셔츠, 군청색 바지
보신 분은 112 또는 아래 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실종.’
그 두 글자가 사람들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우리랑 있었잖아... 언제부턴가 조금씩 이상하긴 했지.”
“장기판에 말을 자꾸 거꾸로 놓고, 돌아가신 마누라 이름을 부르고…”
“그땐 그냥 술 한잔 하신 줄 알았지…”
모두가 뒤늦게 고개를 떨궜다.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이제야 하나둘 맞춰졌다.
그들은 알면서도 몰랐고, 보면서도 지나쳤다. 노인의 이상 행동은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노인의 나라’가 되어버린 지금, 늙고 아픈 것은 그저 흔한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공원은 유난히 조용했다. 장기판도, 바둑판도 손길이 뜸했다. 김상구 영감님이 앉던 자리만이 유독 빈 듯, 찬 기운이 돌았다.
“어르신… 김상구 영감님, 찾으셨대요.”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어디서?”
“남양주 쪽 마을버스 종점이래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서울 가는 차 언제 오나’ 하고 계셨대요.”
“아이고, 천만다행이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반가움과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김상구 영감님을, 일상 속에서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 탑골공원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장기판 옆 벤치엔 노인복지센터에서 나와 혈압을 재고 상담을 해주었고, 근처 중학교 학생들이 할아버지들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자원봉사 활동도 시작됐다.
그리고 이틀 후, 김상구 영감님이 다시 공원에 나왔다.
이번엔 배렛모 대신, 목에 이름표와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허허, 이제 날 잃어버릴 일은 없겠지?
내가 목걸이로 등록했어. 탑골공원 출근부 1번!”
모두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너머에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찾아야 할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씁쓸한 자각이 함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