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의 하루
어느 날 문득, 공원 한복판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저 양반은 지난달에도 청소 일 했잖아!”
“그래서? 내가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탑골공원 한쪽 벤치에서 노인 둘이 삿대질을 했다.
주변에서 장기를 두던 어르신들도 고개를 들었다.
서울시는 노인복지 차원에서 65세 이상에게 공공일자리를 제공한다. 횡단보도 안내, 공원 청소, 분리수거 등 하루 몇 시간씩 근무하고 월 27만원 정도 받는다. 그 적은 돈에도 공원 노인들 사이에선 ‘일자리’는 체면이자 생계였다. 문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것. 매달 모집이 시작되면 신청서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영감은 분리수거 일자리에 신청하려고 탑골 근처 동사무소에 들렀는데, 이미 접수 마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감이요? 시작한지 하루도 안 됐다면서요.”
“벌써 마감됐습니다. 신청자가 많았거든요.”
화가 난 김영감은 돌아와 공원에서 박영감에게 하소연했다.
“아니, 저번 달에도 한 양반이 이번 달에도 또 한다는 거야. 왜 중복 신청하는걸 막질 않아?”
“그러게 말이야. 지난달에 청소하던 김노인, 이번엔 횡단보도에 또 서 있더라고.”
이야기를 듣던 최영감이 쓱 말을 건넸다.
“…근데 그 양반들 말이야. 아들이 사업 말아먹고, 며느리랑 손주까지 데리고 들어왔다더군.”
“그렇다고 그 양반만 두 달 연속 하면 다른 사람은 어쩌라고…”
“그 사람만 사정 어려운 건 아니잖아.”
“그래도 룰은 지켜야지.”
“그럼 사정 없는 사람만 일해야 하나?”
의견은 엇갈렸다. 어떤 이는 “그런 사정은 구청이 알아서 판단해야지”라고 했고, 다른 이는 “어차피 구청은 몰라, 우리는 서로 다 아는 사이잖아”라고 했다.
그날 오후, 공원에 나타난 복지센터 직원이 포스트잇을 붙였다. ‘공정한 일자리 배분을 위해 중복 신청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들 사이에 찬바람이 돌았다. 박영감은 다음 달 신청을 포기했고, 김영감은 처음으로 ‘나도 신청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조용히 일자리를 반납한 사람은 중복 신청자였던 그 김노인이었다.
“어차피 다음 달엔 또 생기니까요. 그땐 다른 어르신이 하시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하던 조끼를 벗어 공원 벤치에 내려놓았다.
탑골공원의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양보와 체념이 엇갈리는 장소였다. 작고 짧은 일자리 하나에도, 인생만큼 무거운 사연들이 실려 있는 곳. 이곳이 탑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