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기록
어제는 참 행복한 하루였다. 아침에 문득 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언니가 친구와 함께 킨텍스 박람회에 오는 중이라고 했다. 왜 연락을 안 했냐고 묻자, 친구랑 오기도 하고 내가 아파서 나오기 힘들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컨디션 따위는 뒤로하고 급히 씻고 나갔다.
솔직히 요즘 내 몸 상태로 5천 보를 걸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언니를 만나니 저절로 힘이 났다. 또 목조건축 박람회는 볼거리도 많고 재미난 것도 많아 덕분에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어느 부스에선 선비 갓을 파는 곳이 있어 사려고 했더니 상품이 다 나가고 진열품만 남았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검정고시 합격한 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망부석처럼 서 있었더니, 가게 주인도 마음이 움직였는지 진열품이라며 주셨다. 우리 아이는 한복이나 역사 제복 같은 걸 유난히 좋아해서 귀한 선비 갓을 선물하면 무지 좋아할게 뻔했다. 게다가 계산도 내가 한 게 아니라 언니가 선물하고 싶다며 대신 내주었으니 나는 결국 아저씨 앞에서 팔아 달라고 떼만 쓴 셈이 되었다.
박람회를 보고 나와 언니와 언니 친구랑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언니 친구가 해준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무슨 일을 하든 체력이 먼저야.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움직임이라도 오늘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달라져. 그걸 꾸준히 2~3년 이어가면 3년 뒤엔 전혀 다른 네 모습이 되어 있을 거야.
그리고 어떤 결과를 보고자 할 땐 10년, 20년, 길게는 30년을 바라봐. 나도 10년 전, 30년 전을 떠올려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달라. 그저 공부 하나를 시작했을 뿐인데, 그 꾸준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거든. 반대로 계획을 급하게 잡으면 오늘 당장 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여 지치고, 빠른 결과에 집착하다가 금세 실망하게 돼. 하지만 일상에 ‘+1’을 한다고 생각해 봐. 지금 하는 일상에 아주 조금만 덧붙이는 거지. 그럼 할 수 있잖아?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지만, 10년 후엔 반드시 단단한 결실로 돌아와. 너도 아직 젊어.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 우리도 해냈으니, 너도 오늘부터 원하는 네가 되기 위한 작은 한 가지를 꾸준히 해봐.”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큰 용기를 얻었다. 늘 아픈 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희망은 자식 잘 되는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체념해 왔는데, 언니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마음속에 산소가 채워지는 듯했다.
내 나이가 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새로운 길을 그려볼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제의 5천 보처럼, 오늘의 작은 걸음 하나가 내 내일을 바꿀지 모른다. 왕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나는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