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주머니를 빌다

글을 배우고 느끼는

by 이음


글감, 글감..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새롭고 낯선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흔하지 않고, 의외성을 가진 소재가 뭐가 있을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건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뿐이다.

마치 낡은 구슬주머니에서 같은 색깔 구슬만 계속 쏟아지는 느낌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도깨비를 한번 만나고 싶다.

노래주머니 대신, 글주머니 하나만 달라고 말이다.

주머니를 열면 반짝거리는 글감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다. 얼마나 황홀한가.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할 이야기,

한 번 읽으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

그리고 나 스스로도 두근거리는 결말까지.


하지만 현실의 나는, 도깨비도 없고 글주머니도 없다.

있다고 해도, 그 주머니에 담을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넣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메모장만 바라본다.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땐 세상이 오아시스 같은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감탄하며,

나는 그저 독자로서 행복하기만 한데 막상 내가 쓰려면, 세상이 너무 단조로와 보인다.


내 하루는 밥 먹고, 차 마시고, 글 쓰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잠드는 단조로운 흐름의 반복.


그러니 글감이란 건, 밖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

내 안에서, 내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너무 힘겹게 낚아 올리면 독자도, 나도, 그 글을 읽고는 숨이 막힌고,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억지스러운 글은 결국 들키고 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처럼 중얼거린다.

“도깨비님 도깨비님 파란 불빛으로 오소서..”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혹시 도깨비는 내 안에 있는 게 아닐까?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 마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순간들을

조심스레 주워 담는 이 두 손,

어쩌면 그게 이미 나만의 도깨비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펜을 들어 첫 문장을 쓴다.

주머니 속에서 반짝이는 글감을 꺼내는 대신,

오늘 하루의 작은 숨결을 꺼내어 메모장을 연다.

그 순간 깨닫는다.

글쓰기의 고뇌란, 글감이 없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너무도 많은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