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기록
아침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여름의 끝자락, 아이의 특목고 입학설명회에 다녀왔다.
설명회를 듣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이게 정말 고등학교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절차는 복잡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한가득.
정신이 산만해지고 머릿속은 뒤죽박죽, 체력까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학교와 기숙사 투어까지 마치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녹초가 되었지만, 아이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 나 이 학교 꼭 올래. 다시는 학교 다니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다니고 싶어졌어. 가슴이 막 뛰어. 여기서 열심히 해서 유학도 갈 수 있다면 꼭 가보고 싶어!”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뛰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은 저 멀리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으면, 부모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 아이가 하고 싶다니 해줘야겠지만, 집에 와서 일정표를 정리하기에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대학 갈 때는 더 힘들 거야. 그러니까 미리 부탁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부탁할 부모가 있다는 건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과
‘이걸 내가 어떻게 다 감당하나’ 하는 현실적인 자아가 부딪혔다.
올해만 해도 조카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언니는 그 복잡한 과정을 어떻게 해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이상한 엄마인 건가 싶다가도, 순간적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서류 앞에만 서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서류에 대한 일종의 ‘노이로즈’가 있다. 직업병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은 서류에 파묻혀 살아온 탓인지… 이제는 종이 뭉치만 봐도 숨이 막힌다.
아이가 고등학교만 무사히 들어가면, 그때는 좀 숨통이 트일까? 지금은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다.
우리나라의 고입, 대입 제도가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편협하다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정에서 충분히 지원할 수 없는, 그늘진 곳에 있는 아이들은 이 길을 홀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그 아이들을 떠올리니 입시 제도가 원망스럽고 참 답답했다.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면 주말에만 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보고 싶고, 허전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쩌면 본격적인 ‘빈 둥지 증후군’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심했다.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매일 등산을 하자고. 산을 오르며 체력을 회복하고, 조금씩 내 삶을 다시 찾아가자고 말이다.
곧 가을이 온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심장이 콩닥콩닥거린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부는 정발산을 천천히 오르며
산과 이야기하고, 풀과 인사하며 걷는 그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작은 천국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늦여름이 남아 있다.
‘아쉬워 말고 어여 가그라, 여름아.
내 참 많이 더웠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