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기록
이른 새벽,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적막이 참 좋다.
도시의 소음이 가라앉은 시간, 모두의 삶에도 잠시나마 쉼이 주어진다. 이런 때는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된다.
어젯밤, 작은 고민 하나가 생겼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 땡땡이가 금요일에 생일이래.”
“응, 그래.”
“근데 개네 아버님이 부탁이 있는데, 개네 집이 좁아서 생파를 못 한데. 치킨이랑 피자를 시켜 줄 테니까 우리 집에서 대신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응, 당연하지.”
“누구누구 오는데? 몇 시에 하고? 엄마가 준비해 줄 건 없어?”
“아니, 없어.”
“아, 미역국은 먹고 온데?”
“아닐걸. 생일 챙겨줄 사람이 없잖아. 엄마도 안 계시고.”
그 아이를 보면, 늘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인다.
친구네 집에서 끼니를 때우던 나의 청소년기, 허기와 외로움에 늘 고팠던 마음. 그래서인지 늘 그 아이의 배고픔과 외로움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알코올에 매이고, 양육은 어려우시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다. 늘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갚아야 하는 성정에 가정환경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움을 먼저 청했으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아마 그만큼 아이가 생일 파티를 간절히 원했을 테다.
나는 생각했다.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피자와 치킨만이 아닌, 미역국과 잡채, 갈비찜만이라도 올려 “너의 소중함을. 네 엄마도 이렇게 해주고 싶었을 것임을” 대신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매우 조심스럽다.
혹여 아이의 아버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아이가 상처받을까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두자니, 내 집에서 아이의 생일을 하는데, 어쩌면 생에 처음이 될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도 먹이지 않고 보내게 될까 더 마음에 걸렸다.
나도 모르게 내손이 어젯밤 소고기를 주문해 버렸다. 아직 결정은 내리지 못했지만, 오늘 저녁까지만 마음을 정하면 한다.
나는 단지 함께 살고 싶다. 내 친구 어머니들이 내게 베픈 사랑같이 나눌 수 있는 건 나누고, 먹일 수 있는 건 먹이며 살고 싶다. 생명에 소중함에 있어 니 아이, 내 아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의 마음은 결국 하나가 아닌가. 모두의 아이가 소중하고 귀하다.
물론 작은 밥상 하나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돌아보며 산다는 건, 때로는 그런 불편함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마음은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아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 하나가 남는다면 그 대가쯤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친구 아버님 성격을 생각하면 무서운데, 나는 먹이고 싶다. 그냥 미역국 한 그릇에 따신 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