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를 샀다

수필통

by 이음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실패했다.
김치냉장고 없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사고야 말았다. 시골에서 받아오는 김치는 많은데 넣을 곳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치냉장고에서 막 꺼낸 김치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는데, 우리 집 일반 냉장고에 들어가면 그 윤기가 금세 사라지고 맛도 변했다.
결국, 미니멀은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고추장, 된장, 장아찌, 종류별 김치만 해도 벌써 냉장고 반은 차지한다. 이럴 땐 그냥 마당 있는 집이 그립다.

고추장과 된장, 간장은 항아리 장독에 넣고,
김치는 마당을 파서 묻고,
동치미는 얼음 깨서 떠다 먹는 그 시원한 맛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풍경이다.

조금 있으면 김장철이 다가오지만 나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해마다 챙겨 주시는 곳도 친정도 있다. 그러다 보니 김치는 늘 충분히 있는 셈이다. 김장철이 다가와 언니에게 물었다.

“올해 배추가 잘 안 됐다면서?”


“응, 비가 하도 와서 다 썩었대. 배추값도 비쌀 거야.”


“그럼 김장하지 말지.”


“절임배추 사서 조금만 해야지. 어머님 기다리실 텐데"


“하지 마시라 해, 안돼. 우리 집에서 해서 아가씨네 , 어머님, 우리 집 이렇게 셋집이 나눠가지니깐..”

실제로 언니는 김장을 해서 막내도 챙겨주고 나도 챙겨준다. 그러니 많이 할 수밖에 없을 테다. 매번 가져다 먹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는 김치를 담그지 않아도 김치가 많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만들지 않아도 풍족하다.
주변에서 챙겨 주시는 정성 덕분이다.
이런 축복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직접 해본 사람만 안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의 결정체라는 걸.

이제 냉장고가 세 대나 되어 부담스럽지만,
그 속이 가득 차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앞으로는 김치찜, 김치전, 꽁치김치조림,
콩나물김칫국, 김치등뼈찜, 김치삼겹살덮밥…
온갖 김치 요리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냉장고 속 김치도 조금은 줄어들 테다.

사람의 욕심은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살다 보면 꼭 필요한 건 남기게 마련이다.
김치냉장고 하나로 다시 깨달았다.
비우는 삶도 좋지만,
때로는 가득 채워진 냉장고 속에서
사랑과 정이 익어가는 냄새가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결국 미니멀은 물건의 개수가 아니라,
마음의 여백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