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우고 느끼는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늘 스승님의 문장을 닮고 싶었다.
그분의 글은 물결처럼 고요했고,
은유는 구름처럼 부드러웠다.
또 감정의 결은 실처럼 가늘고 정교해서
모든 글의 아름다운 문장의 질감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글쓰기의 모든 시간을
나는 그분에게 배우며 보냈다.
문장 하나, 글자수 하나까지 뜯어보며
언젠가 나도 저런 언어를 쓸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나마 믿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다.
나는 스승님을 닮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쓰고, 아무리 고치고, 아무리 읽어도
내 문장은 그분의 서정적인 빛깔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은유를 쓰고 싶은데 자꾸 고백이 튀어나오고,
결을 쓰고 싶은데 내면의 심연만 드러났다.
스승님처럼 세상을 조용히 비추고 싶은데
나는 삶의 절벽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엔 그 사실이 조금 아팠다.
‘왜 나는 스승님을 닮지 못할까.’
‘왜 내 문장은 이렇게 거칠고 진하며
때로는 너무나 직설적일까.’
문학이라는 넓은 물가에서
나는 늘 목마른 사람처럼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단순한 진실 하나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승님과 다른 삶을 건너왔다는 것을 말이다.
스승님은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붓 대신 펜을 들었을 뿐,
구름을 퍼다 가을을 그리고,
파도를 울려 세상에 경종을 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스승님의 글을 좋아한다.
그 미학적인 글결 속에 품은 세상은
그분의 손을 거치면
색을 입고, 춤을 추고, 빛이 난다.
“예쁜 문장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지만
내면이 차올라 스스로 빛을 내는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승님처럼 되지 못함을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스승님의 언어가
세상을 품은 바다라면,
내 언어는
살아남은 이야기를 드러내는 ‘불’에 가깝기 때문이다.
삶이 다르면 문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장은 결국
그 사람이 지나온 세계를 닮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스승을 닮지 못했다고 슬퍼하던 나는
어느 순간 조금씩 깨닿게 되었다.
반드시 제자는
스승의 문장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스승의 철학을
자기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고민이 깃든 길 위에 서 있다.
조용히 감정을 비추는 사람도,
은유를 정교하게 다루는 사람도 아니지만,
나는 스승님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만큼은
잃지 않았다.
진실을 쓸 것.
꾸미지 말 것.
과장하지 말 것.
있는 그대로를 견디고 기록할 것.
그 가르침은
내가 쓰는 모든 문장 속 어디엔가
조용히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다른 바람을 품는다.
스승님을 닮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문장이 나를 닮는 것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스승의 언어를 품고,
내 삶의 심연을 지나온 목소리로
‘나의 문체’를 세우는 일.
아마 그것이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갈증은 스승님을 닮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 문장이 태어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나의 언어도 누군가에게
가을을 전할 낙엽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날까지,
나는 나의 속도로 써 내려갈 것이다.
내 문체를, 내 삶을, 내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