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가족의 해풍소
우리 아이는 틱장애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사춘기라 그런지 증상이 심해져서 다시 약을 먹고 있었다. 마침 약을 처방받으러 가야 했다. 틱장애는 병원을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니던 지방 병원을 그대로 다니고 있었다.
어제는 남편과 아이가 이사오기 전 다니던 병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운전하기 힘들다며 차를 터미널에 두고 간다고 해서 나는 안 따라갔다. 병원비 용으로 내 체크카드를 주어 보냈다.
근데 그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올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비상금으로 차비를 내고 시외버스를 탔다고 했다. 마침 월급날이 다가올 때라 남편도 돈이 없을 시기였다. 남편은 용돈도 다 떨어지고, 차도 안 가져갔고, 날은 춥고, 아픈 애기를 데리고 지방에 갔으니 진퇴양난을 겪은 것이다.
하필 그때 내가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자고 있어서 나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남편은 같은 지역에 처형이 살아도 전화해서 몇 만 원만 빌려 달라고 말할 성격이 못된다. 할 수 없이 친구에게 오만 원을 빌려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마친상황이었다.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아들한테, 남편한테 카톡이 엄청 와 있었다. 체크카드에 돈이 없다고, 이러다 고아되겠다고 난리가 나있었다. 순간 불안이 터졌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 , 맞다”
“농협에서 이체해 놔야는데, 깜박했구나 “
우리 집은 통장별로 기능이 따로 있다. 그러다 보니 의료비 통장에 돈을 넣어둔다는 걸 깜박하고 준 것이다. 한 번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얼른 통장에 돈을 입금하고 전화를 했다.
다행히 남편이 진료까지 마친 상태라고 했다. 세시가 넘었는데 음료하나 못 마시고 밥도 못 먹었다고 화를 냈다. 너무 미안해서 계속 사과를 했다. 많이 춥진 않은지? 애기는 뭐라고 하는지 등의 얘기를 조금 하고 밥 먹고 출발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추운데 고생했을 생각에 저녁을 부지런히 차리고 있었다. 그때 남편과 아이가 들어왔다. 들어오면서부터 얼굴은 울그락 붉으락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애기도 진이 다 빠져 있었다. 애기를 끌어안고 엄마가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출발했는데 저녁 8시가 넘어 들어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서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순두부 국도 덜고, 애기가 좋아하는 얼큰 두부찌개도 덜고, 고기도 내었다.
“난 밥 안 먹어”
“속이 안 좋아”
“아~ 그래?”
“저녁 뭔데?”
“응, 순두부국, 새우젓 매운 두부찌개, 돼지고기 삶은 거, 파김치, 깍두기, 삶은 계란“
“난 안 먹어”
“그럼 순두부 국물만 먹을래 여보?”
“아냐, 안 먹을래 “
“그럼 수제비 해줄까?”
“안 먹어”
“그래 알겠어”
“애기는 먹을 거지?”
“응, 난 배고파 엄마, 밥 빨리 줘”
“난 라면 끓여 먹어야겠다”
“왜? 속이 안 좋다며?”
“그냥”
“알겠어, 그럼 자긴 속 편해지면 이따가 라면 끓여줄게”
상을 다 차리고 밥을 푸려고 했다.
“그냥 밥 줘라”
“밥 먹을 수 있겠어?”
(”아 놔, 또 시작이네 “) 속으로
“아~ 뭐, 대충 먹어, 대충 “
(“아 놔, 진짜 대충 안 차렸구먼, 뭘 자꾸 대충 먹으랴. 혼자 까탈 부리고”)속으로
(”죄가 무거워 참고 있었다 “) 속으로
밥을 차려 주고 국을 내어 주니 자기 국을 내 앞에 탁 내려놓는다.
“난 국 안 먹어 “
“알겠어”
그렇게 남편은 젓가락으로 밥을 헤집다가 남기고 저녁상을 치웠다.
그때부터 짜증의 강이 흘렀다. 난 상을 치우고 열이 안식은 남편은 소파에 앉았다. 저승사자 얼굴을 하고는 하나씩 하나씩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에 밥을 싸 가지고 다닌다. 결혼하고 거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지금은 가끔 요리를 싸가고 동료들은 반찬을 가져온다.
직장 동료가 묵은지 넣은 감자탕은 먹긴 먹는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시래기, 토란대, 고사리를 넣고 끓인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감자탕에 감자가 안 들어 있으면 그게 감자탕이냐고 뭐라 했다는 것이다.
파는 것처럼 끓여야지, 누가 감자탕에 묵은지를 넣느냐며 말하는데. 동료를 빌어 자기 본심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도 알자나? 그 감자가 그 감자가 아닌 거. 그때 감자 넣는 걸 깜박한 거라고 말했잖아. 다음에는 넣어줬어. 기억 않나?”
직원들이 곱창이나, 돼지국밥, 편육 이런 거는 잘 먹는다고 했다.
“동료가 당신을 닮아서 한 가지에 꽂히면 계속 그것만 먹어”
“피곤해 죽겠어. 요즘은 맨날 배추만 싸와”
웃겼다. 배추만 싸 온다니, 나랑 진짜 비슷하네, 생각하며 말했다.
“어머, 자기 같은 음식 연속 먹는 거 예전에 엄청 싫어했잖아? 내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밥 하느라 고생했게”
“지금도 싫어해”
(”뭐시여, 며칠 전에 돼지국밥을 두 번 먹였는데, 얼마나 싫었을까 “)
나는 슬슬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깐족이, 투덜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야 피곤한데 들어가서 쉬어”
“아냐 , 나 좀 내버려 둬 “
“아니 나 설거지하는데, 여보가 계속 말 거는 거야”
“여보가 계속 나한테 짜증 난 거 풀고 싶어서 긁는 거자나 “
“내가 미안해, 아까도 사과했잖아. 카드 한도 없는 거 준거 미안해. 그래서 내가 청소도 얼른하고 저녁도 열심히 해놓고 기다렸잖아. 정말 생각도 못했어. 요즘 약을 먹고 있어서 그래”
“처음이 자나 이렇게 못 챙긴 거”
“내가 안 아프면 예전처럼 여보 짜증 일주일도 참겠는데, 지금은 나도 금방 욱하고 올라와”
“그러니 제발 저승사자 얼굴하고 거실에서 분위기 어둡게 하지 말고 들어가 쉬어 “
“왜 꼭 감정을 사람한테 풀라고 그래”
“그거 옆에 있는 사람 미치는 거야”
“난 빨래도 개야 하고 할 일도 많아”
“서로 기운 빼지 말자,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난 가만히 있는데 왜 그래?”
“아니 , 자기 말투가 점점 기분 나빠지고 있다니깐” ( 내 목소리가 좀 커졌다)
그러자 남편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불 끄고 눕더니 코를 골며 잠들었다.
진짜 거친 말을 해야 대화가 끝난다. 좋게 돌려 말하면 왜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님 모른 척하는 건지.
내가 엄청난 실수를 했긴 했지만, 너무 융통성 없는 남편이 답답하다. 화가 나면 꼭 사람한테 풀어야 하는 성격도 배우자는 매우 힘들다.
반품도 안되고 서로 참고 살아야겠지만, 가끔은 시어머니에게 택배로 돌려 보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