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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18. 2022

오늘 저녁은 뜨끈한 돼지국밥이야

수달 가족의 해풍소

나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아무 데나 막 들어가면 맛집이고, 맛집을 찾아가면 별로 맛이 없다. 본디 게을러서 찾아다니고 줄 서는 것도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날도 해운대 앞바다에서 보이는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태어나 처음 먹어본 돼지국밥이었다. 그곳은 또 운 좋겠도 엄청난 맛집이었다. 몇 대째 하는 집이라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오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집이라고 했다. 한 술 떴던 것 같은데, 어느새 뚝배기를 들고 국물까지 완샷 하고 있었다.


“감히 누가 갱상도 음식은 다 맛이 없다고 했던가 “


경이로운 맛이었다. 진한 국물인데 은은하고, 과하지 않으며 순수한 맛이 참 좋았다. 다대기 안 넣고 소금만 넣고도 독보적으로 훌륭한 맛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린내가 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돼지 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역시 세상에 제일 맛있는 음식은 국밥 시리즈지 ‘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애기에게 국밥을 먹이고 싶었다. 나는 기왕이면 아이가 안 먹어 본 음식을 해주고 싶어 한다. 네이버를 뒤져 돼지국밥 레시피를 찾아봤다.


돼지다리뼈를 우린 육수까지는 엄두가 안 나서 전에 얼려둔 사골육수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래서 ’ 돼지 머리 고기, 염통, 오소리감투‘를 구입했다. 하루 만에 도착한 부속물을 긁어내고, 자르며 기름들을 손질했다. 통생강을 넣고 물을 팔팔 끓인 다음, 찜통으로 고기를 하강시켰다. 한 번 푹 쪄서 나온 고기들은 부들부들 고소 고소해졌다.


토렴까진 못하고 따로국밥으로 내었다. 다대기에 파송송 썰고, 청양고추 다지고, 후춧가루를 올려냈다. 애기가 밥을 말아 먹으며 계속 엄지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나는 손질할 때 났던 누린내에 질려 한술도 못 먹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맛있게 먹으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밥을 할 때 제일 좋은 점은 애기가 참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한 입만, 한 입만을 외치며 한입씩 먹고 갈 때마다 ‘아기새가 부리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게 그렇게 이뻐 죽겠다.


아이는 매일 물어본다.


“오늘은 뭐해줄 거야 엄마? ”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


아이는 매일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사를 연발해서 엄마를 움직이게 한다. 자칫 나는 아기의 숙주가 된 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우리 아이의 능력이아니겠는가. 예쁘게 말하고, 맛있게 먹어서 원하는 걸 쟁취하는 고기능이야 말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필수 기능이다.


나는 오늘도 ‘음, 맛있어. 맛있어 엄마’하며 물개 박수를 치는 아이에 모습을 저장한다. 나에겐 언제 떠올려도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아이에 기억에 우리 집 저녁은 ‘청국장 보글보글 끓이는 냄새, 제육볶음 지지직 타듯이 볶는 냄새, 시금치를 참기름’으로 목욕시키는 냄새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가 자랐을 때  집은 ‘배고프면 생각나는 곳, 밥 냄새나는 곳, 쉬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매일 해줄 수 있는 동행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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