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2.22/수)

어느 공황장애,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아~ 안 떠지는 눈.

일어나야 하는데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싶다. 추운 몸이 달팽이마냥 움추러든다. 별이의 무서운 눈이 내 눈썹 앞까지 들어와 있다.


“냐옹”

“일어나랑 집사야”

“별이 목 빠진다 잠꾸래기야”

“참치 데울 시간이당, 참치 참치“


너의 배고픈 본능이 엄마의 수면 본능과 대립한다. 누가 이길 것인가. 승자는 늘 자식들이지… 수면잠옷을 씌우고 실 눈을 떴다.주전자에 물을 올리니 별이의 육성이 터진다.


“빨리해라, 냐옹”

“배고프다, 냐옹”


참치를 중탕해서 내놓으면 뜨거워도 안 먹고, 조금 차가워도 안 먹는다. 몰래 숨겨둔 사료를 모두 골라내고는 응가 묻는 시늉을 한다. 앞발로 장판을 긁으며…


“버려라 냐옹”

“못쓴다 냐옹”

“벅, 벅”


별이와 아침을 시작하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몇도인지, 오늘 할 일과 어제와 이어지는 일은 무엇인지.


점점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일기를 쓰게 됐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뭘 좋아했는지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기록하는 일이다. 소멸하고 말 나의 시간들과 생각들을 남기고 싶은 쓰는 이의 본능이다.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좋은 일도, 사랑하는 모든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내가 나를 그리워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에 가야 한다. 실은 어제 가야 했는데 감기가 안 나아서 못 갔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 혼자 가는 건 처음이다. 오늘도 컨디션이 좀 멜랑꼴리이긴 한데 갈 건 가야 하니..


잘 다녀올 수 있을지.. 살짝 두렵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보자. 올해 나의 목표는 회복이니 자꾸 도전해 봐야 한다. 갈 생각을 해서인지, 체력이 문제인지 벌써 숨이 차다. 범불안장애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상황이 있다. 예를 들면 심리성으로도 몸이 아프고, 체력이 부족해져도 불안이 온다. 지금 같은 경우는 약간 헷갈린다. 감기가 아직 덜 나았다. 몸도 힘든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살짝 긴장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외버스를 타도 가족들이 데리러 나와 있지만 오늘은 완전히 혼자 걷고 모두 찾아다녀야 한다. 아무튼 많이 걸을 것 같은

날이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도 살짝 겁내는 이유는 체력이 방전되면 어디서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한계에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다.


나는 서울도 예전처럼 쉽게 다니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보고 살고 싶다. 그 첫걸음을 오늘 떼어본다. 엄마들 말처럼, 내가 또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잘 하지 않겠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2.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