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4.5/수)
어느 공황장애,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아이가 신발을 벗을 때부터 흥분해서 들어왔다.
“엄마 오늘 우리 반 여자애 목 졸렸어”
“응? 무슨 소리야?”
“아니, 관종 여자애 있잖아.. 애들 유언비어 퍼트리고 다니고 이간질시켜서 하루도 안 싸우는 날이 없다는 애“
“응. 근데 그 친구가 왜 목이 졸려?”
“다른 반 남자애랑 싸움이 붙었데”
“근데 그 남자애도 하필이면 우리 학년 문제아여 “
“사이코끼리 만난 거지 “
“여자애가 막 말로 싸웠겠지, 그래서 남자애가 목을 졸랐는데 질식하려는 찰나에
다행히 음악 선생님들이 뛰어 오셨데 “
“넌 뭐 했어? 안 말리고?”
“응 나? 난 그때 회장단 내일 모임 있어서 교육받고 있었어. 담당 선생님한테”
“나 내일 학급회의도 해야 하고, 전교 회장단 모임도 있어서 가야 하고 바쁘거든”
“그럼 넌 어떻게 들었어?”
“응 애들이 뛰어와서 말해줬어 “
“난 얼른 담샘 찾아가 보고했지”
“그랬더니 선생님이 넌 안 말리고 뭐 했냐고 화내시데 “
“그래서 나도 내일 일정 교육받느라 그 자리에 없었다고 했지.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애들이 와서 말해줘서 듣자마자 샘한테 온 거라고 “
“그래 잘했네”
“우리 선생님 엄청 화났어”
“다른 반 남자애가 우리 반 여자애 목 조른 거잖아 “
“그래서 그 여자 친구는 괜찮아?”
“응 다행히 괜찮데 “
“왜 그런 건데?”
“아, 이번에는 우리 반 여자애 잘 못이 아니래 “
“우리 반 애가 복도에서 수다 떠는데 그 남자애가 와서 막 시비 걸었데 “
“어깨빵하고 계속 시비 거니깐 싸운 거지 “
“그 여자애가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계속 그러니깐 싸웠데 “
“말발에서 밀리니깐 목을 졸랐나 봐”
“와~ 기가 막힌다”
“나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요즘애들 진짜 무섭다 “
“지금 등교한 지 한 달 안에 사건이 왜 이래 많아 “
“도난 사건에다, 책상을 던진 애도 있다 했지, 여자애들 패싸움 났지. 남자애들 패싸움 났지 “
“엊그제는 부회장이 반친구 때려서 눈가 다 찢어졌다며 “
“무섭다 너네 애들”
“그러게 우리 반은 담임 선생님이 학주기도 하고 애들도 착한 편인데, 다른 반은 벌써 일진 형성하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래 “
“만약에 네가 보는 앞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응 말려야지”
“응 그렇지 당연히 말려야지”
“근데 상대방이 한 명이 아니고 무리이거나, 상대방이 연필 같은 무기를 지니고 있으면 일단 스톱이야 “
“잠깐 생각해야 해 “
“직접 뛰어들지 말고 선생님한테 얼른 달려가서 모셔오든가, 친구 한 명 지적해서 선생님 모셔와 달라고 부탁하든가 “
“곁에 다른 애들 있으면 지적해서 같이 말리고, 없으면 기다려 “
“혼자는 못 이겨, 무기 들고 있거나 여러 명이면”
“만약 한 명인데 체급차이가 나는데도 꼭 말려야 하면 한 군데만 잡고 죽어라고 때려 “
“여기저기 때려 봤자 힘만 빠져 “
“만약 한 군데 때릴 정도도 안되면 무조건 물어 “
“사람은 살려야 하니깐 “
“개가 포기할 때까지 물고 있어 “
“나머지는 엄마가 해결할게 “
“싸울만한 상대면은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려, 그 대신 개보다 훨씬 세게 때려”
“앗싸리, 한방으로 정리가 되게 “
“너도 운동이란 운동은 다 했잖아”
“그 대신 한 대 맞았는데 세대 때리면 과잉진압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어 버린다 “
”상황판단을 잘해야 해 “
“한 대 맞고 지금 물러서면 계속될 일인지 판단해야 해 “
“이건 빵셔틀이나 왕따가 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어 “
“나를 건들면 피곤하겠다. 나를 건들면 이 동네 또라이는 너라는 걸 보여줘야 해 “
“그래야 피곤해서 안 건드려, 알지?”
“서열 정리상 주고받는 힘겨루기랑 장난은
또 다른 것도 알지?”
“한 대 맞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상대는 재밌어지고 내가 뭔가 된 거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
“그러니 그럴 땐 슬며시 웃으며 대차게 한 대 때려줘 “
“남자들의 세상은 진짜 이상하다”
“뭘 그렇게 간을 보는지 “
“엄마 말도 마. 나도 맨날 어깨빵 맞아”
“헐, 그럼 넌 어떻게 해? “
“난 왜 때려 이 자슥아 이러면서 주먹으로 세게 치지”
“그 친구는 누군데?”
“몰라, 다른 반 애들이야”
“근데 서로 모르는데 왜 그래?”
“모르니깐, 알려고 그러는 거 같아 “
“일종에 확인 같은 거지”
“애가 내 위인가 아래인가”
“너도 많이 맞았어? “
“웅 어떤 날은 두세 건도 있어 “
“근데 나도 그만큼 갚아 주고 와 “
“다 모르는 애들이야?”
“응”
“그럼 선생님도 아셔?”
“아니, 남자가 그런 거로 샘한테 말하면 쫄보지, 보여주는 것도 쫄리면 절대 안 돼”
“내가 기죽잖아? 그럼 우리 반이 다 우스워지는 거야 “
“그래서 내가 1학년 회장들 중에서도 공부 제일 잘하려고 하는 거잖아 “
“반이 창피해지면 안 되니깐”
“하..”
“엄마는 니들 세상이 참 어렵다 “
“걱정하지 마, 아들 잘하고 있어”
“여자애들이 나 잘생겼데”
“우리 반 비주얼남은 나래”
“그래서 기분 좋았어?”
“응 뭐, 나쁘지 않지 “
“이제 세수도 잘하고 머리도 잘 감고 다닐 거야 “
“그려 이제 왕비듬은 좀 어떻게 해보자”
“엄마도 비듬은 좀 창피하다 “
“엄마 오늘 철수 만나서 얘기해 봤는데 개는 시간이 없데”
“그래, 주말에도 힘들데? “
“주말에는 이틀다 9시에 학원 수업시작해서 밤 12시에 끝난데”
“쉬는 날이 없데”
“그래, 어쩌니 힘들어서..”
“그리고 민수는 아빠가 코로나 종식 때까지는 외출 금지라서, 학원 외에는 아무 데도 못 나온데”
“그래서 저번에 기철이네서 모일 때도 민수 못 왔잖아”
“아바타 보러 가자할 때도 못 나온다 했고 “
”그렇구나, 할 수 없지 “
어제 아들이 말하길 초등학교 때 친구가 반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그아인 초등학교 때 절친 중에 한 명이었다. 내성적이고 차분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유학 중이셔서 아빠랑만 산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 얘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진다고 들었다. 친구가 기운도 없고 체력도 많이 약해 보였다. 마치 어릴 적 나를 보는 거 같아 마음이 쓰이던 친구였다. 그래서 물었다.
“응 , 철수가 뭐래?”
“엄마 철수가 약하잖아, 근데 얼굴이 더 썩었어”
“왜?”
“응, 학원이 11시에 끝난데”
“집에 와서 학원 숙제하고 나면 한두 시에 잔데 “
“어머, 어째. 안 그래도 그 친구는 체력이 약해 보이던데”
“철수가 넌 공부 어떻게 하냐고 묻더라고 “
“비결 좀 알려 달라고 “
“응,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응, 선행을 안 하고, 학원을 안 가면 된다고”
“헐, 그래서 철수가 뭐래?”
“개도 헐하고 고개 숙이며 개네 반으로 갔어”
“윤호야 네 친구들만 그런 거야? 아님 너네 아이들이 다 그런 거야?”
“학원에서 그렇게 늦게 끝나면 피곤해서 어떻게 버텨 “
“너도 학교에서 동아리까지 하면 5시 넘어서 오잖아 “
“너도 피아노랑 운동 다시 하고 싶은데 피곤해서 못하고 있는 거잖아. 하교가 늦으니깐 “
“음.. 반애들 보니깐 학원 늦게까지 가는 애들은 일단 학교서 졸아”
“졸고, 대 놓고 자고. 학교 일과에는 별 관심이 없어”
“피곤하니깐 그런 거 같아”
“그리고 학원에서 선행 많이 하는 애들은 이미 수학 진도를 다 알아 “
“수업할 때 멍해도 다 아니깐 선생님이 신경을 안 써”
“근데 문제는 개들한테 맞혀서 우리 수업을 한다는 거지 “
“다 배웠지, 이런 식으로”
“애들 눈빛은 절반이상 모르는데도 “
“그래?”
“넌 어떤데?”
“확실히 중학교 오니깐 진도가 너무 빨라”
“설명도 다 안 해주고 넘어가 “
“이해할 시간은커녕 몇 장씩 뛰어넘어 “
“수학시간에 애들 표정 보면 눈이 다 맛 간 눈이야 “
“수포자들이 매일매일 늘어나는 게 보여 “
“내가 질문 많이 하고, 쉬는 시간에 따라가서 물어보니깐 싫어하시는데 “
“이런 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귀찮아하시는데도 내가 자꾸 따라가지 “
“두 번 공부하기 싫으니깐”
“그래서 내가 웬만하면 수학은 진도 나가기 전 단원을 꼭 한 번씩 읽어보고 풀어보고 수업해 “
“이해할 시간이 부족하니깐 “
“나도 한 단원은 예습을 해야 이해가 가는 거지”
“그럼 네가 철수랑 민수가 학원을 심하게 다니잖아”
“성적 하고 진도도 안 맞고. 공부 방법이 잘 못 됐잖아 “
“우리 집으로 하루 초대해서 피자 같은 거 먹으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면 어때?”
“넌 집에서 맨날 자고, 피아노 치고, 책 보고, 레고 만들고, 총 놀이 하고, 그림 그리면서도 놀 시간이 부족하다며 “
“밀크티나 문제집도 하루에 하나 할까 말까 하자나”
“그래, 그래볼까?”
“내가 애들 만나면 물어볼게”
“근데 개들 부모님은 학원만 보내면 다인 줄 아신다는데 그게 도움이 될까? “
“방법을 몰라서 아무 길이나 가는 거랑, 방법을 알면서 부딪히고 길을 찾는 거는 아예 다르지 않을까 “
“부모님 문제는 친구들이 조율할 문제고 “
“정말 중요한 거는 여러 시행착오 방법을 알려 주는 이가 주변에 있느냐이지 “
절친들인데 둘은 상의권이고 둘은 성적이
낮잖아 “
“낮아도 상관없는 집이면 상관없는데 낮으면 안 되는 집들이고 하필 그 집들이 학원을 많이 보내잖아 “
“네 친구들이 힘들어하니깐”
“분수도 못 푸는데 중등수학을 어떻게 따라가”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다른데 무조건 학원 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
“학원 가서 잘하는 애들은 집에서도 잘할 애들이었던 거야 “
“성인도 9시 출근해서 7시 퇴근하면 깔아지는데 애기들이 무슨 기운으로 그렇게 다녀”
“같이 방법을 찾아보면 친구들이 덜 고생할 수도 있으니깐 윤호가 도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아 “
우리는 어제 이렇게 이야기를 끝냈다. 그런데 오늘 말해 보니 친구들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유학 간 엄마는 올해에 들어오셨다는데 친구는 기쁘지 않다고 했단다. 6년의 공백을 그분은 학원으로 메꿔 주고 싶어 하신다고 한다.
사교육이 나쁜 게 아닌데 지나친 게 문제다. 저녁은 어디서 먹고 밤 11시에 끝나는 학원을 중1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학업과의 전쟁의 시대에 산다. 우리 아들 친구 엄마들은 그렇게 유학 중이신 분들이 많다. 공부는 좋은 건데 자연스레 반감이 생기는 상황이 자꾸 찾아온다.
아이들이 아이들 같지 않은 이유는 어른에게 있다. 아이들이 아이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아이의 시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 아이의 선택권을 인용해 줘야 한다. 아이는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창의력이 높아지고 자기 탐구가 시작된다. 자신의 선택이 쌓일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내면이 튼튼해진다.
지금 아이들의 세상은 퇴보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문명이 발전한 시대이지만 원시시대처럼 폭력적이고 경계적이다. 아이들이 병든다는 건 인류에 나무뿌리가 병드는 것과 같다. 인류의 존폐는 지금 어른들에게 달려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보고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이건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