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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3.29/수)

어느 공황장애,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와~ 진짜 오랜만에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7시간을 내리 잔 건 오래되었던 거 같아요. 하도 악몽을 꾸길래 방을 바꾸고 매트리스를 바꿔서 그런가 완전 꿈잠을 잤습니다. 두 시간마다 자다 깨는 고통이 떠나가는 걸까요? 좋은 시그널입니다.


얼마 전 제가 아시는 분이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습니다. 굉장히 맘이 힘들었습니다. 잠시 공황과 불안도 심해졌습니다. 맘을 추스리기 힘들더라고요. 코로나 전에 뵙고 못 뵈었는데.. 이런 일로 소식을 듣게 되니 고인의 고충을 모르고 우러러만 봤던 제가 참 죄송하더라고요.


그분의 저작권 문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참 즐겁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분은 제 친한 친구의 스승님이자 첫사랑이셨거든요. 늘 밝은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셔서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지요.


그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되고 제가 너무 놀라니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그 애니메이션 출판사가 어딘데? “

“아마 OO 아닌가 찾아봐?”


“왜?”


“응, 그 업체 이쪽에서 유명하거든 “

“애니메이션 제작 및 저작권으로 문제가 많아”

“자본의 무력이지”


“응, 그렇구나”


“아마 OO일 거야”

“어 맞네, OO업체”


“그래 “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 일 많아”

“구름빵도 그렇고”


남편이 그래픽 디자이너라 이쪽 업체를 조금 안다고 하더라고요. 옛말에 인생무상이라더니.. 참 덧없는 삶이라 느껴졌습니다. 사람 사는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고생한 만큼 이루어지지도 않고요. 일하는 사람 있으면 거둬가는 사람 있으니 소작농 하던 시절과 무엇이 다를까요.


현정부하는 행태를 봐도 그렇고 국민들 삶이 팍팍해지는 걸 봐도 그렇고 어수선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기간이었습니다.


며칠 전 모범택시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김도기:예전 우리 부대 씨름판에 새 모래가 들어온 적이 있었어. 첫 모래는 불순물도 없고 깨끗하고 부드러워 맨발에 닿는 느낌이 좋거든. 그런데 후임 하나가 그 모래판에서 군복을 꿰매다 바늘을 잃어버렸지 뭐야?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아무도 그 모래판 위에 들어가지 못했어. 넓고 깨끗한 새 모래판이 바늘 하나 때문에 위험한 곳이 되어버린 거야. 너 하나 때문에]


좋은 사람들도 많고,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명감으로 임하시는 출판사분들도 많습니다. 적자일 걸 알면서도 좋은 책을

내려하고, 함께 살고자 애쓰는 기업들도 있을 텐데, 이번 일로 또다시 자본은 군사정권의 힘만 있는 나쁜 행태로 비춰졌습니다. 실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인데요.


또다시 바늘하나가 깨끗한 모래판을 공포로 몰아넣는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친구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아무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또 남은 가족분들의 슬픔은 평생 덮이지도 않겠지요. 막상 떠나신 분의 아팠던 마음은 또 어쩌나요. 아무도 모르게 덮일 것입니다. 모래 속 바늘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결국은 심장을 저격했으니깐요.


맨날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염치없고, 나조차도 지겨워서 조용히 끙끙 앓았던 날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이 통증조차 감사한 일이구나 느껴집니다. 적어도 타인에 의한 통증은 아니니깐요.


삶의 희비가 연극처럼 울부짖습니다. 어두운 극장을 밝히기도 하고 암막으로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배우들은 다시 그 이야기를 연기하고 관객들은 까르르 웃습니다. 사람의 삶과 참 닮았지요. 때로는 우리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가, 때로는 관람객이 됩니다.


울고 웃는 모든 순간이 무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삶에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요?

부디 희극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픈 연극은 이젠 증망 증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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