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5.29/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부처님이 오신 걸 잊고>


조급한 아침이었다. 정신과 약을 다 먹은 지 일주일이 훨씬 넘었었다. 점점 몸이 힘들어지고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아뿔싸 ‘부처님이 오셨구나 ‘ 깜박했네. 어쩐지 오는 내내 상가들이 조용했다.


할 수 없이 주말을 견뎠으니,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모자에 후드티만 걸치고 출발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보자~ 일주일도 훨씬 늦게 오셨네요?”


“네, 약과 씨름하느라 “


“왜죠?”


“더러 덜 먹기도 하고, 더 먹기도 하고요. 컨디션도 난조고 해서요”


“잘하셨어요. 사실 늘 진찰일보다 빨리 오실 때가 많았어요. 알고 계셨어요?


“제가요?”

“그랬군요. ㅎㅎ”


“하도 중복 처방이 많아서 곤란했는데, 이제야 처방일 수가 얼추 맞네요”

“잘하셨어요”


“아 정신과는 약을 중복 처방하면 안 되는구나, 첨 알았네. (속마음)



“네..”


“그래 어떠셨어요?”


“파란만장했습니다”


“아이고 왜요”


“아, 약이 참 힘들었어요”

“처음 자살 충동을 느낄 때는 약을 3일 정도 먹으니 진정이 되었어요. 그리곤 이삼일 후부터는 복시도 심하고 어지럽고 가수면 상태였어요. 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요 “

“그래서 약을 며칠 안 먹었더니 3일 있으니깐 제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

“근데 약을 안 먹으니 우울증이 점점 더 올라오는 거예요 “

“그래서 반알을 먹어보니 괜찮아졌어요 “

“그러다 반알도 효과가 없어지더라고요. 극심한 불안과 과호흡이 다시 재발했어요 “

“그래서 다시 한 알씩 먹었어요”

“선생님 약이 참 힘들어요”

“잘 들을 때도 있지만 벅찰 때도 많아요 “


“그 약이 원래 무지 센 약입니다”

“그래서 운전하거나 음주하시는 분은 절대처방 안 나갑니다”

“환자분은 근데 그 약을 쓰셔야 해요”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꼭 챙겨 드세요”

“요즘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근데요 선생님. 어제는 이상한 증상이 또 나타났어요”


“어떤 증상이요?”


“우울증에 충동장애도 있나요”


“제가 술을 진짜 안 먹거든요. 몸에도 안 받고요. 꼭 마셔야 하면 캔맥주 오백이 다예요 그것도 마시면 일주일은 술병이 납니다”


“근데 어젯밤부터 슬슬 술이 먹고 싶었어요. 음식이 먹고 싶은 군침 도는 식욕은 확실히 아니었어요 “

“입이 아니고 머리가 먹고 싶다는 느낌이었어요 “


“드라마에서 술에 약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거든요. 어제는 그 기분이 이해됐어요 “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 먹고 구토를 하든, 술병이 나든, 먹다 죽든 상관없지.. 이런 기분이요 “


“제가 새벽에 정말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거예요 “

“저도 절 보고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집에 맥주가 떨어졌더라고요. 집에 양주, 럼주, 포도주가 있었는데.. 그건 또 진짜 못 먹거든요. 그나마 마실 수 있는 게 맥주뿐이에요 “

“그나마 그것만 이성적이었어요 “

“제 느낌에 정말 어제 집에 맥주가 있었으면 위험할 뻔했습니다”


“저 왜 이런가요?”


“무음”(대답을 안 하시고)


“아무튼 환자분 지금 매우 심각한 상태이니깐 약 조절 잘해서 드셔야 해요. 지금 드린 약이 매우 센 거지만 그게 꼭 필요한 거니

저번처럼 반도 먹고 안 먹기도 하고 두 번씩만 꼭 챙겨 드세요”


또 물어보기 뭐해서 주제를 돌렸다.


“저 지금 주신 분홍약요”

“그게 우울증 약 맞죠?”


“아닌데요..”


“네?????????????????”

“그럼 뭐예요? “


“강한 안정제예요”


“그럼 우울증 약은 뭔데요?”


“처음부터 쭉 드신 흰색약이요”

.

.

.

“아. 네”


“그럼 몸 잘 챙기시고 이 주 후에 뵐게요 “


“네…에….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일어나다 휘청했다.


“큰일이네요. 잠깐 앉았었는데도 이렇게 어지러우시면. 몸 관리 잘하세요”


“네”


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불안장애가 심하다했다. 진단서도 ‘범불안장애’인데.. 약은 우울증 약이 주된

약이었다니..


처음에는 이 흰 알약만 계속 먹었었다. 그럼 난 처음부터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근데 왜 사실대로 말씀 안 해주신 거지. 우울증이라 하면 더 놀랄까 봐 그랬던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얀 거짓말이었을까?


뭘까?

샘 자꾸 무음일 때마다 저 자꾸 고구마 먹었는데 물 없는 기분이에요.


샘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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