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5.30/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너희 셋이 싸우면 누가 이기지?>


“요것 봐라”

“괘씸죄 추가니라 “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 했던가.


이틀 전에 출범한 우울증이 새로운 증상(알코올 뇌) 나는 이 아이를 3번째 인격으로 분리하겠다.


기존엔 나와, 아픈 내 모습을 관찰하는 나와

둘이었다. 그래서 아플 때도 덜 당황하고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


3번째 인격 ‘뇌’ 출범 현황


1일째: (23.5.28/일) 상황

저녁 7시경에 나타났다. 그냥 이유 없이 맥주가 한잔하고 싶었다. 그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니 나의 이성과 마찰이 일어났다.


(이성)

“너 술 못 먹잖아”


(뇌)

“괜찮아. 다 그냥 마시면 돼”


(이성)

“난 마시고 싶지 않은데. 저녁도 먹었고”


(뇌)

“아 말이 많아, 그냥 좀 먹자고”

“네가 뭔데 니 맘대로 해 “

“물대신 술에 약도 먹어도 돼, 다 돼 “


(이성)

“미쳤어? 나 편두통도 있고, 술 안 받는

체질이야 “


(뇌)

“대충 좀 살아 그냥 편하게 살아 “


(이성)

“난 술 먹으면 일주일 동안 구토하고 병나서 아무것도 못해”


(뇌)

“괜찮아, 안 죽어. 그냥 마셔봐. 답답하게 살지 좀 마 “


그러다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다행히 맥주는 없었다. 다른 술들은 있었지만, 맥주보다 센 술은 이성이 허락하지 않았다.(이게 일요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상황이다.)


2일째 : (23.5.29월) 상황

저녁 7시쯤 되니 갑자기 또 맥주가 먹고 싶었다. ‘아 우울증은 술을 부르는구나’ 이때 확신했다. 다행히 밤에만 그건가 보다. 얼마나 다행 인가 하고 참다가 충동이 점점 심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다.


우울증이 술을 부르는 건 맞다. 술이 우울증을 부르기도 하고. 둘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비슷했다.


그리곤 무서운 글을 봤다. 자살 전의 전조 증상으로 올라온 비슷한 글들이었다.


1. 겉으론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0)

2. 병원에서는 심각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0)

3. 안 먹던 술을 찾는다.(0)

4. 술을 찾는 횟수가 잦아진다.

5. 본인도 모르게 혼잣말을 자주 한다.(0)

‘답답해, 숨 막혀, 짜증 나, 지쳤어, 아파, 슬퍼…’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계획처럼 내일 죽어야지. 다 무슨 계획하에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충동적으로 본인도 모르게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들이다.


그들은 예정된 스케줄도 있었고 삶은 정상적인 진행형이었다. 환자 본인도 힘들기야 하지만 ‘내가 설마 그럴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보면 본인은 시도를 했고, 폐쇄병동에 갇혀 있게 됐다고 한다.


이런 글들을 찾아보니 왜 정신과 샘이 아무 말도 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겉으로는 별로 티가 안 난다고 한다. 나 역시 겉으로 보면 매우 유쾌한 장난꾸러기에 불과하다. 전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나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그래도 밤에만 나타나니 다행이라 안심했다.


밤 11시 심각하게 맥주가 먹고 싶었다. 어제의 충동보다 강했다. 그 시간에 내가 편의점을 가서라도 먹어야겠다는 힘 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얼른 꼬깔콘을 먹었다. 아까 상황을 들은 남편이 얼른 치킨을 시켰다. 내가 평소 치킨을 좋아하니 충동을 잊으라고 시킨 거 같다. 결국 배불러 몇 개 못 먹었지만 충동자제에는 도움이 됐다.


일찍 잠들어야 할 것 같다. 못 자는 것도 병이지만, 늦게 자는 게 매우 위험하다.



3일째 : (23.5.30/화) 상황

무력한 아침이다. 식구들 배웅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팔다리는 이미 내 팔다리가 아니다. 밤새 낙지와 바뀐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흐물거리고 무너질 수가 없다. 약간은 숨이 차며 복시가 오고 기분은 공허하다.


(관찰하는 나)

“어 뭐지? 이 기분?”

“어제 알코올뇌가 안 갔네, 뭐야 또 다른 능력도 있는 거야 “

“그 넘은 맞는데 다른 지각을 느끼게 하네 “

“하… 힘들어”

“아우 뻐근해”

“휴….. “

“멍….. “

“음………..”

천장을 삼십 분째 쳐다본다. 그저 아무 감정과 감성 생각도 없이 계속 멍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거죽만 남고 텅 빈 느낌이 든다. 달리 어떻게 표현할 방도를 모르겠다.

가슴도 마음도 영혼도 텅 빈 상태. 처음 느껴 보는 혼란이고, 무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든다. 앞뒤 생각 없이 그저 무로..


이 녀석이 빌런이다.

주위를 강화해야겠다.


처방받은 약을 이제 세 번 먹었다. 아직 효과가 없다. 또 삼일은 먹어야 살만하려나.


‘알코올뇌’가 감각과 감정마저 다 흡입해 갔다.


이제 난무얼 할 것인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힘도 없다.


겨우 약만 챙겨 먹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우울증.. 이 녀석들의 친구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 매일 다른 녀석이 합석하면 곤란해진다. 난 너한테 관심이 없는데 넌 생각이 다른가 보다.


내가 너무 매력적이더라도 나한테 관심을

좀 꺼줄래~


발랄한 내게 새드앤딩은 좀 안 어울리지

않니?



#최선을 다해서 기록 하고 있다.

부디 기록할 힘만이라도 지켜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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