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5.31/수)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능소화가 필 무렵>

능소화가 필 때가 되었다. 엄마 기일이 되면 담장엔 능소화가 활짝 피어난다. 나의 그리움이 담장마다 살구빛으로 물드는 때이다.


능소화의 색은 자연이 표현할 수 있는 고혹한 참색이다. 멋스럽지만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난 담장에 늘어진 능소화를 보면 그 집 담장이 되고 싶다. 얼마나 행복할까? 저리도 어여쁜 능소화가 앉아 있으니.


능소화는 태양을 좋아하지만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난 참 능소화를 닮았다. 성격은 밝지만 그늘에서도 잘 자란 듯 비춘다. 그래서 그럴까.

가끔 그때의 한기가 살갗에 성에처럼 맺힌다.


12살에 엄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는 내가 휴학계를 내고 엄마를 병간호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임종을 혼자서 보게 되었다. 그때는 충격이 너무 커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위로받아야 하는 건지, 치료받아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처가 불에 탄 화상처럼 남아 있다.


난 마치 능소화의 꽃말처럼 늘 기다리고, 외롭고,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집은 있는데 지붕이 없는 집이다. 기둥은 있는데 부러진 기둥집이다. 그 집에서 어린아이는 몹시도 많이 떨고 추웠나 보다. 그래서 성장환경이 인간의 내면을 구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어제는 우울증의 변검술 덕분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하루였다. 우울증은 다양한 색깔과 성질을 가지고 있다. 예로 들면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나 신호가 나인지, 아닌지 조차 헷갈리게 한다.


나는 우울증이 본연의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봐도 신경전달의 이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변검 이 눔은 일요일, 월요일은 술로 찾아왔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화요일은 하루를 온종일 함께했다. 공허와 무로 위장해서 안온함을 느끼게 해 주고 상상하게 했다.


어제의 느낌을 한발 뒤에서 바라보면 이랬다.


“이렇게 천장만 보며 사는 거랑 무로 돌아가는 거랑 뭐가 다르지”


“얼마나 편안할까!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


“생로병사.. 무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 “


이렇게 합리화시키며 타당성을 세뇌시켰다. 마치 집단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유사할 듯싶었다.


저녁에 두세 시간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는 집안일도 하고 아이 공부도 조금 봐줬다.


그리곤 동생과 통화를 했다. 그래도 나의 상태에 대해 친청식구 한 명은 알고 있어야 할거 같아서였다.


내 얘기를 들은 동생은 목소리가 변했다. 그 무겁고 어두운 공기가 핸드폰 너머로 느껴졌다. 알겠다고 하며 끊자고 하는데 아뿔싸 싶었다. 나의 우울증이 전화기 너머로 전염된 거 같아서였다. 너무 미안하고 두려워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친정식구 누구에게도 내 상태를 알리지 말자. 버틸 수 있는 정신인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그리곤 나의 상태를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얼굴색이 검게 변하더니 화를 내는 것도 같고, 불안에 치달은 것도 같았다”


많이 놀란 듯싶었다. 맞다 이 사람도 나보다 약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 사람의 정신적 지주였을텐데.. 잘 못 말했구나. 버틸 수 없을 테다.


이토록 우울증은 주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전염되게 한다. 그래서 환자들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 눈앞에서 사색이 되는 걸 보는 게

더 미안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난 비교적 강인한 우울증 환자라고 자부했다. 그건 초기 우울증 환자의 거만하고 지나친 자만이었다. 누구 하나 내 얘기를 듣고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난 누굴 믿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낸다 말했나 모르겠다.


나도 이제 말한 사람이 없다.

아니 말하기 두렵다. 나의 말에 그들의 감정이 다칠까, 그들의 일상이 무너질까 두렵다.


이제는 알겠다.

왜 우울증 환자들이 매우 밝은 사람들이었고, 전혀 예측이 안 되는 사람들이었는지…


달은 낮에도 떠 있지만 존재감을 감추고 있다. 그 이유는 뜨거운 태양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서야 그 열기를 식히는 이유는 내일 다시 태양을 보고 싶어서이다.


우울증 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있고 싶어서이다.


그리곤 뒤에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린다.


내일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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