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6.6/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건강하지 못한 생각들>


좋은 밤 되셨나요?

오늘도 끝임 없는 질문들 속에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저는 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데요.

어려서부터 궁금한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우울증이 걸리기 전에도 그랬고요. 우울증이 걸린 지금도 그렇고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심리, 동물과 식물의 기분까지 궁금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입니다.


질문은 좋은 거죠?

만약 질문이 없었다면 호모사피엔스의 문명이 이렇게 발달되지도 못했을 거고요.

하지만 삶의 질문이 꼭 긍정적일까요?

질문은 건강한 질문과, 건강하지 못한 질문으로 구별됩니다.


지금부터 건강한 질문과 건강하지 못한 질문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건강한 질문과, 건강하지 못한 질문은 우선 의도부터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건강한 질문>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는 정말 과학적인, 종교적인 어떤 근원이 알고 싶은 거예요.


<건강하지 못한 질문>

'생명은 무엇인가?' 질문을 한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이런 답변들이 마음에서 울려 퍼집니다. 마치 메아리처럼요.


"누가 나에게 생명을 줬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어차피 돌아갈 인생, 이 힘든 세상을 굳이 버텨야 하는 이유가 뭐야"

"나는 삶에 의미도 없고, 미련도 없는데 말이야"

"어차피 무로 돌아가는 게 인생인데"

"삶이 다해서 갈 때와, 지금 가는 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내 삶이니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건강한 질문은 속에 숨겨진 의도가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질문은 숨겨진 의도가 확실합니다.

무기력을 불러오고 안착시킵니다.

삶을 내일이 아닌 오늘에 멈추게 합니다.

무기력은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무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확장시킵니다.

무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많은 이유를 끊임없이 찾게 만들고요.

걷잡을 수 없는 믿음으로 정착시키려 듭니다.



생명의 본질은 번식과 생명 연장이잖아요.

하다못해 소들도 도축장에 가면 눈물을 흘린다고 하죠.

또 모기는 어떤가요? 밤새 인간의 피 한 방울을 위해서 목숨을 건 전쟁을 불사합니다.

바로 종족 번식과 생명연장을 위해서 말이죠.


그 강한 본능과, 그 강한 애착을 소멸시키는 것이 우울증이라는 병입니다.


제가 우울증을 겪어 보니, 이놈의 가면이 얼마나 많은지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전 우울증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인격을 셋으로 나누었다고요.


인격 1: 본연의 나

인격 2: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

인격 3: 우울증 (이 눔)


깜박하면 나라는 존재와 바라보는 나와 헷갈릴 정도입니다.

우울증이 나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요.

바라보는 나도 우울증이 나로 변신한 걸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정말 변검의 대가 아닌가요.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지금 아프시다면?

지금 우울증이나 기타 신경증 질환을 가지고 계시다면 질문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의도가 좋지 않습니다.


알아차리기 힘드실 때는요.

내가 건강할 때의 질문과 비교해 보세요.


건강할 때는 미래에 관한 질문에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잘 살아보고 싶으셨잖아요.

소중한 걸 지키고 싶으셨죠?

그러기 위해서 삶을 감당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셨잖아요.


우울증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 소중해. 물론 사랑하지, 하지만 인연에는 수명이란 게 있는 거야"

"소중한 걸 내가 다 지킬 힘은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소중한 게 다 지켜졌다면 세상에 아픈 사람은 없었어야겠지"

"사람들에겐 팔자라는 게 있는 거야"

"나는 나의 숙명대로, 남겨진 이들은 또 그들의 숙명대로 사는 거야"

"다 지나가게 되고 내가 없어도 다들 또 살아가게 되어 있어"


이렇게 많은 핑계와 합리화를 들이대며 다른 길로 인도합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의 힘은 강해집니다.

숙주의 삶을 점점 갉아먹으면서요.


정말 무섭지 않으신가요?

듣지 마시고, 대답하지 마세요. 우울증의 의도는 불순합니다.


우울증은 생명의 본질을 교란시키는 병입니다.

우울증의 끊임없는 질문에 빠져들지 마세요.


우리는 그냥 살면 됩니다.


아프기 전처럼요.


그냥 살아요.


함께,


같이,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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