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6.1/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우울증_일어나 나를 봐>
여름이 다가오는 걸 느끼시나요. 요즘 나뭇잎들이 초록 저고리를 하나씩 해 입었더라고요. 바람이 불 때마다 저희 집 창가에는 나뭇잎들이 노크를 합니다.
스르륵 콩콩~
스르륵 콩콩콩~
이틀 전 암막커튼을 걷고 여름 커튼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빛이 참 힘든 사람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눈이 빛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마치 드라큘라 같지요.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정기적으로 동공 확장제를 넣고 시야 검사를 진행하고부터였어요.
결혼 후 큰일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눈으로 왔습니다. 엄청난 안압과 두통으로 동네 안과로 갔습니다.
얼른 제일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큰 병원은 빠른 진료가 어려운 곳이잖아요. 제가 신촌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봤을 땐 이미 진행을 멈춘 상태였습니다.
녹내장은 아닌데 녹내장과 같은 증상이래요. 안압이 높아져서 시신경이 얇아지는 병. 지금은 시신경의 40% 정도가 얇아져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계속 진행 시에는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하니깐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애기는 한 살이었는데 엄마가 시각장애인이 되면 안 되잖아요. ‘제발 애기 초등학교 때까지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땐 나이가 33살이었거든요. 세상이 나를 지구 밖으로 떨어 뜨리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세브란스에서 나오는 길이 연세대를 지나갑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누가 보면 상당한 여자인 줄 알았을 거예요. 그때는 시야 검사로 세상도 보이지 않았고, 상처로 마음의 시력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 병의 진단명은 “시신경 의병증”이었어요. 개그맨 어떤 분도 저와 같은 병으로 시력을 잃으신 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녹내장과 같은 증상인데, 녹내장이 아니면 제 진단명은 뭐예요? “
“그거 아세요? 지구상에 진단명이 있는 병보다 진단명이 없는 병이 더 많습니다”
“증상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거든요. 그럴 때 ‘의병증’이라고 합니다 “
“아, 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지금 다행히 진행이 멈춘 상태시고요”
“정기적으로 다시 진행이 될지 지켜봐야 합니다. 재진행시에는 안압 조절약을 써야 하니깐요 “
“아마 추측건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시거나, 큰 변화를 겪으셨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입니다. 스트레스 관리 잘하시길 바랄게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 이병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지금도 6개월마다 신촌 세브란스를
찾아 정기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시신경 ct를 찍고, 시야 검사를 하고 안압을 재고 모든 시야 검사를 마치고 나면 동공은 이미 확장된 상태입니다. 그때 병원을 나오면 앞은 잘 안 보이고 세상은 온통 무채색으로 변해 있습니다. 마치 안개시트로 눈을 가리고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그때부터였어요. 평상시에도 밝은 빛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시기가요.
우울증이 심해지곤 빛이 더 싫어졌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된 듯이 방에 틀어 박혀 있는 게 편하고, 통증으로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 어둠은 눈을 편안하게 해 주고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불도 켜지 않고 온종일 어두운 방안에 있는 게 좋았어요.
며칠 전에 이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이 안정감은 건강한 안정감이 아니라는 사실이요. 검은색 커튼이 쳐진 방은 뭔지 모르게 상당히 음침했거든요.
점점 어둠 속으로 습식 되어 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걷어 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우울증은 내면과 외면 모두를 조정합니다. 웅크리게 하고, 숨게 합니다. 불을 끄게 하고 어두운 곳으로 점점.. 점점 몰아넣습니다. 그것이 내면이든, 외면이든지요.
“아, 안 되겠다”
“정말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암막 커튼 떼 버리자”
“샤랄라 한 커튼으로 바꾸는 거야 “
빛이 힘들었지만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아침마다 태양빛이 칼날같이 째려보는 게
느껴집니다.
불면증으로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두 시간 정도 잠들어도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면 새들은 아침부터 창문 나뭇가지에 앉아 고성방가를 지르거든요.
집 앞에 초등학교는 수업 알림 종소리를 동네가 떠나가게 크게 틀어 놓습니다.
마치 저도 똑바로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불을 뒤척이며 안 일어나자 머리 위에서 짜증 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일어나라 “
“나는 빛의 속도로 와도 너에겐 8분 전이야”
“그래도 난 널 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어 “
”지금의 날 너에게 보여 줄 수 없다 해도 말이야 “
“너는 어때?”
“빛의 속도로 날 보러 와줄 수 있어? 없으니 내가 왔잖아. 어서 일어나 “
“8분 전의 내가 광속의 고통을 이기고 왔다고 “
“그걸로 부족해? “
”너의 오늘의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위해 일어나 “
태양이 말했습니다.
광속의 고통으로 달려왔다고요.
그 말에 전 뭉클했습니다.
8분 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광속의 고통을 이기고 온 햇살이 고마워서 일어났습니다.
그 따뜻함이 우울증의 두꺼운 벽을 뚫고 가슴을 밝혔습니다.
일어나 커튼을 열고 고성방가 하는 새들에게 가서 속삭였습니다.
“난 일어났어, 다른 집에 가서 계속해 “
그리고 햇살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겼다 햇살아”
“광속을 누가 이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