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요일은 내겐 매우 위험한 날이었다. 나의 우울증은 극으로 달하고 있었다. 내면의 세상은 풍비박산 났는데 겉만 멀쩡해 보였다. 나는 겨우 겨우 이성을 붙들고 있느라 매우 힘든 하루였다.
내가 아픈 걸 많은 이들은 자세히 모른다. 그저 친한 사람들 몇 명 빼고는 말이다. 가족들도 브런치 작가님들 만큼은 자세히 모른다. 나는 그저 깊은 관계가 아닌 인스타나 브런치에서만 털어놓는 걸로 족하다.
나는 속이 곪아터져도 화를 잘 안내는 편이다. 늘 잘 웃고 감정에 기복이 없다. 이건 내 성격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 적이 있다 ‘나는 맞고는 살아도 명랑한년이에요 ‘ 나도 마찬가지다. 속은 아파 죽어도 울다 웃는 사람이다. 오래 삐지거나 화를 내지 못하고, 내가 답답해서라도 꽁하고 오래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며칠 전 친한 언니가 주소를 물어봤다. 언니들은 가끔 먹을 거나, 아들 옷이나, 용돈등을 자주 보내준다. 수박을 하나 보냈다고 먹어보라는 연락이었다.
그날은 예감이 불안했다. 정말 내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언니들에게 갑자기 내가 떠난 소식을 전하면 쓰러질 사람들이었다. 미리 언지를 해야 할 거 같아서 사실을 말했다.
“언니 나 사실 이만저만해서 상담 다녀왔는데 지금 상태가 많이 위태롭데요. 정신병원 강제 입원 직전 상태라네 “
“위태롭지만, 그래도 잘 버텨 볼게요 “
그리곤 몇 시간 동안 답장이 없었다. 5시가 넘어서야 스피커 폰으로 전화가 왔다. 두 언니가 같이 운전을 하면서였다. 일단 내 얘길 듣고 내가 환청까지 들리는지 여부를 물어봤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우울증만 심각하다고 말했다.
(우리 대장언니)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네가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겠어? “
“네 생각은 어때? 입원하고 싶어 “
“네가 입원하고 싶다고 하면 언니가 돈 다 내주고 알아서 다 준비해 줄게 말만 해”
(나)
“아니 언니, 입원한 사람들 사례를 보니 입원하면 좋긴 한데, 일상으로 나오면 다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마약처럼 중독된다고, 쓰는 약도 다르고, 병원은 맞춤형이니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잖아요. 바깥세상의 일은 단절하고 들어간 거고요. 자생력이 사라지는 거 같아요 “
“전 되도록 현상태에서 마음근육을 키우고 싶어요 “
(우리 대장언니)
”그래, 그럼 언니네 집에 와 있어. 쓰러지면 눕히고 정신 들면 일 시키고 정신을 쏙 빠지게 챙겨줄게 “
(나)
“언니 저 체력이 안 돼요”
(우리 대장언니)
“안돼 “
“아무리 아파도 집에서 하루종일 천장만 보고 있으니 없던 병도 생기지, 비 오는 날 산책하는 용기로 운동이라도 다녀 “
“아님 교회 봉사라도 다니든가 “
(나)
“안 돼요, 언니 실신하고 그러는데 교회 봉사가 아니라 민폐예요 “
“내가 제일 괴로운 게 뭔지 알아요 “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
“내가 피해만 준다는 생각이에요 “
“민폐라는 생각, 감정 전염병자라는 미안함이 제일 죽고 싶어요”
“근데 또 피해를 주러 다니라고요”
(나의 사부언니)
“네가 왜 쓸모없어”
“나한테 필요해”
“너라는 동생이 살아만 있는 것만으로도 나한테 살아갈 힘이 된다고 “
“너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언니가 운동 끊어줄게, 필라테스든 요가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데로 알아봐”
“처음엔 5분만 하고 와도 돼, 일 년 정도하고 나면 40분도 할 수 있을 거야”
(나)
“아니 싫어 언니”
“난 신세 지기 싫다니깐”
(나의 사부언니)
”그럼 언니 주말에 오산에서 일산까지 운전하고 가서 피티니스 끊어서 너네 집에 놓고 그냥 온다 “
“그러길 바라?”
(나)
“아 언니, 둘 다 왜 그래..”
“내가 체력도 안되고 몸도 정신도 안된다니깐”
(우리 대장언니)
“걷는 운동하지 마 골치만 더 아파져, 혼자 생각만 많아지고 더 우울해져 “
“언니 말 한 번만 듣자 “
“너 언니 암 걸렸을 때 포도즙 보내주고 앨범 만들어 주고 편지에 선물에.. “
“매번 왜 그렇게 신경 많이 써줬어?”
“우리가 남이야 “
“넌 늘 주려고만 해, 받을 줄도 알아야지 “
(나의 사부언니)
“그래, 우리 김치 갔다 먹을 데 없으면 네가 해주면 되지. 너 잘하는 거 많잖아. 서로 부족한 거 채워주고 살자. 말 좀 들어라, 그만 울고, 응? “
(나)
“언니 저 그럼 소송하는 거만 정리하고요. 지금 변호사 정했으니 조금만 안정 찾고요 “
“두 달만 있으면 어느 정도 정리 되니깐 그때부터 운동 알아볼게요 “
(나의 사부언니)
“안돼”
“변호사가 일하지 네가 일하니? “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
“운동 그거 일주일 내내 갈 수도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만 갈 수도 있어”
“편하게 입고 가게 가장 가까운 데로 알아봐 “
“그리곤 그 선생님 연락처 나한테 찍어줘”
“언니가 12월까지 결재해 줄게”
“니 상태 언니가 다 말하고 니 맞춤형으로 해주라고 다 말해줄게 “
“연락처만 알아와, 너 하고 싶은 종목으로”
(나)
“아, 언니 내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부담되고 미안해서 못하겠어. 그냥 내가 알아서 다닐게요”
(우리 대장언니)
“그럼 부담 가져야지, 남의 돈 쓰는데, 적어 뒀다가 네가 언니 어려울 때 도와줘. 그 부담감으로라도 일어나야지. 네가 하면 안 돼, 억지로 언니들이 시켜야지.. 네가 하면 힘들면 포기하게 돼 “
“언니 말 듣자, 동생아~~“(사자후)
(우리 사부언니)
“일 년 차이로 언니 나 둘 다 암이 왔잖아. 자기한테 가장 약한 부위로 병이 오는 거야. 넌 그게 정신인 거고. 암이나 우울증이나 다 같은 질병이야. 네가 밝은 건 성격인 거고, 네가 아픈 건 병인 거야. 그러니 치료하고 재활하면 되는 거야 “
“언니들이 먼저 해봤잖니. 언니들 말 듣자, 알겠지?”
우리는 삼십 분째 셋이 스피커 폰으로 같은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언니들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우리 대장언니)
”언니 말 잘 들어. 언니가 이번주까지 숙제 준거야 “
“주변 요가원이나 필라테스 가서 가깝고 맘에 드는 데로 연락처 알아 오는 거야? “
“7월부터 바로 다니는 거야, 알겠지? “
“숙제 잘 해와, 이상 끝“
뚜뚜뚜~~
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사자후가 스피커폰에서 떠나가게 들려왔다. 한 언니는 부드럽고 한 언니는 터프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 달라서 잘 맞는다. 내가 할 수 없이 해야 되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생겼다.
세상을 막 놓으려고 하던 순간 불호령 같은 목소리로 언니들이 숙제를 줬다. 정신이 번득 차려졌다. 주변에서 이렇게 도와주는 게 나는 아직도 많이 어렵다. 주는 건 편해도 받는 게 어렵다. 그래도 이번엔 신세를 져보려고 한다. 나의 사랑하는 사수가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