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청소기를 돌려놓고 보일러도 틀었다. 거의 편의점 찐빵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아이스팩을 껴안고 선풍기를 틀었다. 내 찐빵은 뜨거우면 두통이 와서 식혀야 한다.
얼매나 더운지 청소기도 힘들겠다. 우리 청소기는 1년에 400번도 넘게 도는 거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길 얼마나 다행인가. 아침으로 참외하나 약 한봉을 먹고 쉬는 중이다.
가만히 있으니 심심해서 상상을 해봤다.
상상은 얼마큼 해도 좋으니 상관없지 않은가.
이를테면 순간이동을 해서 노량진 시장을 간다. 윤호가 오기 전에 싱싱한 회와 전복을
얼른 사다 놓고 싶다.
비 오는 날 구름우산을 쓰고 떠다니면 좋겠다. 비 오는 바다도 보고 싶고, 산도 보고 싶다. 순삭순삭 머물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마음을 비우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건강해져서 수상스키도 타고 싶고, 테니스도 치고 싶다. 당구장에 가서 포켓볼도 치고 싶고, 볼링장도 가고 싶다. 내가 또 스핀을 기가 막히게 못 돌린다. 아무리 해도 에버리지가 120을 못 넘긴다. 그래서 나는 볼링은 쳐도 쳐도 질리지 않는다.
주택으로 이사 가서 고추며 대파며 오이 같은 걸 골고루 심고 싶다. 남은 땅에는 모두 꽃씨를 뿌려 꽃동산처럼 가꾸면 좋겠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이 다를 테다. 꽃씨가 그 자리에 떨어져서 내년에 다시 자랄게다.땅이 순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왠지 숙연해지지 않는가. 인간은 순환을 못하기 때문이다.
역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아, 다시 아가씨가 되는 상상도 좋다. 이번에는 엄청 잘 생기고 슈트발 좋은 연예인이랑 결혼하고 싶다. 나는 ‘갯마을 차차차의 김선호‘ 가 좋았다. 외모 일단 합격, 성격도 합격, 특히 홍반장이라는 배역이 참 좋았다. 홍반장의 삶의 가치관이 나와 참 잘 맞았다. 크~ 얼굴은 또 어떤가, 자체 후광이 발광한다. 그 보조개 하며 미소하며, 기럭지하며, 한 개도 부족한 게 없다. 또 정장은 얼매나 잘 어울릴 것인가.
‘신랑 입장’ 할 때의 그 엄청난 슈트발과 보조개가 나를 위한 미소라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잠시 행복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면 어떤가? 나의 상상의 세상인 것을.
그를 위해 요리를 하고, 커피를 타 놓고 깨우는 상상~~ 크크크 다음 세상이어도 좋으니~
부디 이루어만 다오.
아이고, 너무 더우니 살짝 맛이 간다.
행복이란 글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삐뚤어진 건가? 행복은 파랑새와 동일어 같은 느낌이 든다. 본래부터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웃고 좋고 불편하고 화나는 모든 감정은 하나이다.
‘행복’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단어이다.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냥 숭고한 자체이다. 볍씨를 뿌리고 거두어 먹이고 살리는 그 자체가 그냥 생의 모든 것이다.
근데 사람들이 행복이란 이름을 붙여서 삶안에서 그걸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다. 삶은 그 삶만으로도 그냥 모든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전에는 나도 몰랐다. 그러니 우린 그것만 알면 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모든 것은 이미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