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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l 02. 2023

잠이 안 와서 하는 얘기

수필통

(길어서 죄송합니다. 그냥 인생극장이니 심심한 분들만 봐주셔요)


오늘도 잠이 안 오네요. 다를 잘 주무시고 계신가요? 올빼미는 아닌데, 불면증이 유독저를 애정합니다.


최근 들어 속상했던 얘기 하나 풀어볼까 해요.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하죠. 사람이 살아가면서 치르는 제일 큰 행사라고 해요. 사랑해서 만났어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저도 정말 어려운 시절이 많았습니다. 협의이혼 절차를 끝내고 동사무소에 접수만 하면 되는 상황까지 가봤지요. 제가 신고를 안 했어요. 애초부터 둘의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애기 생각해서 참 많이 참았습니다. 결혼은 하는 거보다 유지가 더 어렵지요. 아직은 이혼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에 하게 된다고 해도 저는 나쁜 감정으로 하진 않을 거 같아요. 감정의 변화를 존중하려고요. 큰 미련 없이 보내드릴 준비가 ‘하하하’ 은연중에 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하려나요. ‘사랑이 그렇잖아요. 갖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니깐요’ 이젠 뭐 주변에서 머리 깎아야겠다고 장난처럼 그럽니다.


저희 아이반에 친구들 반은 이혼가정이에요. 그중 대부분은 외동들이고요. 외동들이 다 버릇없지는 않아요. 더러 있을 수는 있지만요.


저희 아이 베프중에 홀아버지가 키우는 집이 있어요. 50~60대 사이이신데 이혼가정이세요.


전에 제가 글에 썼던 적이 있던가요?

아들 친구가 놀러 와서 간식을 시켜줬다고요. 햄버거를 줬는데 안 먹더라고요. 아버지가 신세 지면 안 된다고요. 배달음식이나 비싼 음식을 먹고 가면 아버님이 반드시 다시 그 집으로 배달을 보내주신데요. 저도 더는 권유하기 어려웠죠.


굉장히 귀한 자식으로 키우신다고 들었습니다. 늦둥이 외아들이라 더 그렇겠지요. 밥을 세끼 다 해먹이고 인스턴트는 안 먹이고요. 아버님이 연세가 있으셔도 한식을 엄청 잘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형편이 어려워서 그렇지 사랑과 관심은 충분히 받는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마음 같아서는 먹고땡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바른 친구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콜라만 먹고 눈치 없는 제 아들은 옆에서 햄버거를 꿀덕꿀덕 잘도 먹었습니다.


제 가슴이 너무 아픈 거예요. 저희 아들이 갑자기 밉더라고요. 친구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데 눈치 없이 너무 잘 먹으니깐요. 마음 같아서는 확 뺏어 버리고 싶었어요. 콩쥐 엄마 같죠? 암튼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리곤 그 친구가 자주 놀러 왔어요.

제방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장롱을 보더니..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어요?”


“응, 옷이 들어있지, 궁금하면 열어봐”


장롱 네 짝을 다 열어보더니 하는 말이 더 놀라웠어요.


“와, 이게 다 옷이에요”


장롱 네 짝에 가족 3명의 사계절 옷과 침구류가 다 들어 있으면 적은 건데..

이 친구는 많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리곤 냉장고와 싱크대를 계속 열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나가서 물어봤지요.


“뭐 필요해? “

“뭐 줄까?”


“아뇨, 그냥 먹을 거 없나 해서요”


그래서 과자와 음료를 챙겨줬습니다. 그때 제 아들은 게임에 빠져 친구가 돌아다니는지도 몰랐어요.


다음에는 신적 떡볶이를 시켜줬어요.


“와, 저 친구집에서 떡볶이 처음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모나~

오늘은 간식을 먹는 거예요. 이날은 세시반 하교였거든요. 그러니 간식이 4시에 온 거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놀다 가는 시간이 여섯 시에서 여섯 시 반이에요. 그러니 네시반 하교날  다섯 시에 간식을 주면 못 먹는 거죠.


집에 가서 아빠와 저녁을 먹어야 하니깐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간식을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그랬더니 잘 먹었어요. 이뻤지요. 한참 클 때이니 뒤돌아서면 배고프잖아요.


주말에는 짜장면을 먹기로 했어요. 그 친구가 못 고르길래 다 같은 걸로 시켰어요. 짜장면이 오니 둘 다 잘 못 뜯더라고요. 마음이 가서 뜯어 주고 싶었어요.


“이리 줘봐 아가, 내가 해줄게 “

“거기 아가도 이리 주고”


친구 거를 먼저 뜯어 주고 윤호 거를 뜯다 보니 그 아이 얼굴이 환하게 웃는 거예요. 처음 봤습니다. 웃는 모습을요. 제가 아가라고 불러줘서 그런 거 같았어요. 근데 그걸 윤호도 나중에 말했어요. 엄마가 아가라고 부를 때마다 무지 좋아한다고요.


후식으로 수박화채를 줄까? 아님 탄산수에 미쵸를 타 줄까 하니 또 결정을 못해요.


아들이 수박화채를 달라고 해서 수박화채를 줬더니 둘이 엄청 잘 먹어요. 처음 먹어본다며 맛이 신기하다고 속닥속닥 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마치 어릴 때 저를 보는 거 같아서요.


화채그릇이 냉면그릇만 해요. 각자 줬는데 친구는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윤호는 남겼어요.


한 번은 냉동실을 열길래..


“덥니? 아이스크림 줄까? “


“있어요? 네, 주세요”


그래서 윤호 거랑 친구 거랑 퍼서 줬어요.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이걸 사놓고 먹는 거예요?”


“응.. 윤호가 워낙 좋아하고, 이렇게 사는 게 가성비도 좋고 해서 큰 거로 사다 먹어 “


“아..”


그리곤 갈 때는 냉장고를 열어서 달고나 사탕을 한 뭉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더라고요.


참 많이 고민했어요. 이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윤호를 불러서 앉으라고 하고는 얘기를 시작했지요.


“네 친구 누구 말이야”

“우리 집에 와서 잘 놀고 잘 먹는 건 좋아. 근데 친구집 냉장고나 싱크대를 계속 열어 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야”


“어, 그랬어? 난 몰랐는데? “


“혹시 윤호 너도 그러니?”


“아니 엄마 미쳤어. 난 안 먹는 음식도 주시면 꾹 참고 먹고 와 “

“뭐 하러 뒤져, 주면 먹고 안 주면 말지”

“어차피 먹으러 간 것도 아니고, 놀러 간 건데”

“집에서 먹음 되지 엄마랑 “


“휴….”(답답이)


“너야 게임하느라고 친구 주방에 돌아다니는 거 모르지만 엄마는 안방에서도 다 들리거든 “


“그래. 내가 냉장고 열지 말라고 할게”


“아니,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잖아 “

“다음에 그 친구를 초대하고 싶으면 네가 신경을 써야 해 “

“게임에 빠져 있지 말고, 친구가 주방에 가면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내가 줄게라고 먼저 말하고 꺼내줘 “

“네가 이 집에 주인이잖아. 그걸 인식시켜줘야 해 “

“그래서 그런 행동이 ‘예의가 아니구나’ 자연스럽게 배우게 “


“엄마 생각에는 미쳐 못 배웠을 거 같아 “

“엄마가 말하게 되면 그 친구는 상처받을 거야 “


“근데 윤호 네가 방치하면 그 친구는 나쁜 아이가 되어버려”

“다른 친구집 가서도 똑같이 했는데 안 좋은 이야길 들어봐. 자격지심이나 서러움 같은 걸 느낄 수 있지 “

“그러면 안 생겨도 되는 미움이 생길 수도 있잖아 “


“윤호 엄마 말 이해돼? “


“응”


“지금 잡아줘야 해”

“그래야 몰라서 하는 행동이 오해받지 않아 “

“네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네 친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야 “


“이건 정말 중요한 거야 “

“진짜 이해했지?”


“알겠어”

“내가 슬슬 지켜보다가 같이 나와서 물어볼게 “


“근데 윤호야, 그 친구 굉장히 귀하게 큰다고 하지 않았니? “


“응, 난 그렇게 들었어 개한테”


“그럼, 집집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니깐 호기심에 그런 거 같아? 아님 배고파서 그런 거 같아?”


“음.. 내 생각엔 배고픈 거 같아”


“왜?”


“시연이네 가서도 냉장고를 계속 열어”

“시연이네 아빠가 달려 나와서 뭐 줄까? 하니깐 그냥 뭐 먹을 거 없나 해서요. 이러더라고 “

“근데 엄마 시연이네도 먹을 게 없어”

“아빠들이랑 사는 집들은 대체로 먹을 게 없어, 그래서 두유 하나씩 주셔서 그거 먹고 말았지”


“근데 밥 잘 챙겨 주시고, 금이야 옥이야 한다며?”


“엄마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꼭 진실만을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 친구는 생각해 보니 늘 먹을 거를 찾았어. 늘 배가 고팠던 거 같아”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알겠어, 엄마가 놀러 오면 잘 챙겨 줄게”

“아까 말한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그랬더니 금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어요. 그 친구가 주말에 셋이서 인디아나존스 영화를 보러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라 했죠.


-어디 극장

-무슨 영화

-몇 시 관람

-예매 방법

-데리고 가는 보호자

-데리고 오는 보호자


이렇게 정해서 알려달라고요. 거기가 일진이 많거든요. 영화 보러 갔다가 삥 뜯는 걸 몇 번 본 후론 아이들끼리 내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 아버님이 다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왜?

우리 중에 어느 부모가 가도 상관없는데..

혼자서 애들 셋을 맡아 주신다니 죄송했죠.

예매는 더치페이해도 되고, 아님 윤호가 팝콘에 콜라를 사겠다고 했어요.


근데 점심도 사주신다네요. 김밥 먹일 거라 고요. 팝콘 콜라 안 먹여도 된다고요. 이유는 그동안 아드님이 친구네서 잘 먹고 놀은 거에 대한 감사라고요.


아..

참…

먹먹했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다 이해하는데, 그게 마음이 편하시다니 어쩔 수 없지요.


왠지 어릴 적 제 모습 같아서, 제 동생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이는 거 같아요. 그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아니깐요.


잘 자라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서로 형제도 없는데요. 허기진 배라도 채워주는 친구엄마 일 수 있음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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