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7.1/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오랜만에 오래 잔 날이다>


옛날에 밤새 안녕하셨냐는 말이 괜히 했던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오늘 나는 안녕하다.


새소리도 안 들릴 만큼 오래 잤다. 오랜 조각잠에 탈진한 건지, 다운된 정신이 못 일어난 건지 잘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우동 같기도 하고 금방 쌍수한 사람 같기도 했다. 전날의 상흔들이 얼굴에 남았다. 씁쓸하기도 하고, 어제의 일이 생각나 얼굴에 거품을 가득 올렸다. 내가 아닌 모습을 보고 싶었다.


거품을 씻어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래 또 ‘그냥’을 잊어버렸네. 정신 차리자.


늦게 일어나서 그런가 1시가 넘었는데도 우울증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거 완전 개꿀이 아닌가.


책상에 서류 뭉치들이 높이도 쌓여 있다. 기한이 있는 것들이라 일어나야 하건만, 몸댕이가 싫다고 때를 쓴다.


애기 수학 전 학년 ‘수의 체계도와, 용어의 해설, 풀이의 연계도를 만들어 화장실에 붙여 줘야 한다. 그게 내게는 중요한 숙제이다. 이걸 보면 수학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전체의 그림과 구분이 쉬울 텐데 그걸 난 미루고 있다. 이럴 땐 나도 내가 엄마가 맞나 싶다.


애기는 이번 수행평가에 ‘우’를 받았다고 조금 상심한 듯싶었다. 학원을 가고 싶대서 친구들 가는 데를 알아보라고 했다. 친구들이 다 오지 말라고 엄청 말린단다. 이젠 내가 움직여야는데 모성애의 힘이 약하다.


수요일도 충격받는 일이 있었다. 볼 일이 있어 동사무소에 갔다가. 자매 단톡방을 보게 됐다.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셨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휘청했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다. 고르지 못한 호흡이 금방 실신할 거처럼 느껴졌다. 안 되겠다 싶어 편의점에 가서 안정을 취했다. 동사무소 바로 뒤에 편의점이 있어 망정이지 진짜 길에 누울뻔했다.


휴.. 그냥 그냥 넘어가는 주가 없다.


사실 막 화가 난다. 김밥 드시고 싶다고 해서 언니가 면회 가는 주였다. 그런데 또 코로나로 못 가게 되었다. 얼마나 드시고 싶으실까, 왜 하필 그 호실에서 아빠만 코로나에 걸린 걸까,


노인네가 힘도 없는데 그걸 또 어찌 견디란 말인지. 그냥 안 아프다가 주무시며 돌아가셨으면 좋겠는데. 병마들이 내버려 두질 않는다. 워낙 시골이라 김밥 주문해 드릴 곳도 없고.. 이러다 엄마처럼 드시고 싶은 것도 못 드시고 가시면 어쩌나 싶어 매일 불안하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가족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내 처지가 어째 이런 지

모르겠다.


매일 그냥 살자고 다짐한다.

기쁨도 슬픔도 혼란도 모두 한 보자기 안에 들은 삶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흔들리다 보면 유독 같은 것들끼리 모이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때는 그 시기를 좌우하는 거 같다.


글을 쓰고 방심하는 사이 그분이 오시고 계시다. 약을 준비할 때다.


그분의 성실함에 축배를 들자.


다 같이 잔을


뒤집어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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