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6.30/금)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이제 쪼매 알 것도 같다>


습하고 더운 아침이다. 어떤 아침이라도 상관없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구나’까지만 하기로 했다. 요즘 나에게 생각은 ‘독’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냥’으로 멈추기가 쉽지 않다. 막상 우울이가 오면 ‘그냥’이가 지고 만다.


이젠 슬슬 느낌이 온다.


“어, 이거 불안이가 올라카네 “

“아니 바로 과호흡이 따라오고 “

“뭐시어 우울이도 올랑말랑 하는겨?”

“오늘 왜들 이러는겨, 한 개만 와도 힘든디그리들 다들 한가한겨? “

“환장하겠네, 날도 얄궂구먼 “


이젠 요놈들의 전조증상을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해서 대비가 가능한 건 없다. 그래도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 맞는 거 보단 공이 날아오는 걸 보면서 맞는 게 심장이 덜 놀란다.


어제저녁은 고군분투하는 밤이었다. 약도 두 번 먹었고 약효를 보는데도 오래 걸렸다. 증상도 다양해서 얼마나 못생겨졌는지 모른다.


애기 아빠가 퇴근 전이라 아들이 동남아 반세오 볶음밥을 해줬다. 요즘 입맛이 없다. 아침도 참외하나 먹고 점심은 물만 먹었다. 저녁은 굶고 싶었는데 아이의 정성이 갸륵해서 한 입만 떠야지 했다. ‘오우 의외로 맛나서 반접시씩 같이 먹었다’ 그리곤 애기가 챙겨주는 약을 또 먹었다.


그리곤 12시쯤 안정이 찾아왔다. 할 수 없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고 나니 새가 울다 마는 아침이 찾아왔다.


나는 아픈 지 3년째인데도 통증도 우울증도 아직 익숙하지 않는다. 눈물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우울증은 보통 낮 12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심하게 온다. 저녁에는 불안이나 공황이가 오는 편이다. 그나마 아침 일기를 쓰는 이 시간이 가장 컨디션이 좋다.


그래서 이 시간이 되면 막 욕심이 생긴다. 글을 많이 쓰고 싶고, 뭘 조금 해볼 욕심말이다. 근데 급하게 쓴 글은 내놓기가 쪼매 부끄럽다. 내 알맹이들이 잘 나와서 놀았으면 좋겠는데 부끄랍게 돌아당기면 또 날 자책하게 된다. 그러니 글도 신중해야는데, 막상 행동은 꼼꼼하지가 못하다.


난 참 어수룩 투성이이다.


그래도 뭐~ 되는대로 살련다.

내가 죽갔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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