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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7.20/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10분은 숨통이 트인 날이에요>


밤을 꼴딱 새웠습니다.

제가 수면제를 이긴 거죠…. 하하하.. 하


오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오후에 정신과를 다녀왔어요. 오늘 샘 기분이 좋으신 거예요. 한결 편안하게 상담을 하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 이주동안 어떠셨어요?”


“음…….”

-

-

-

“샘 출력이 많이 느려졌습니다. 히히”

“아~ 아로마테라피, 명상, 요가 수업하고부터는 분명히 좋아지고 있어요 “

“기분도 좋고 감사한 순간들이 훨씬 길어졌습니다 “

“과호흡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고요”

“ 문제는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서 또 다른 힘든 게 문제예요 “


“어떻게요?”


“음.. 손이 자주 덜덜 떨려요”

“그리고 심장통증이 굉장히 심합니다”

“금방 죽을 거 같고, 진짜 심장병 아닌가 싶고요, 119를 불러야 하나 마나 싶을 정도예요 “

“그런 통증 간격이 잦아지면서 ‘공포감이랄까, 불안감이랄까’ 이런 게 깊어지는 거 같아요 “


“네에~”


“전에는 제가 제 감정을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그랬죠”


“이젠 알겠어요 “

“음………………..“(글썽글썽)

“슬퍼요.. 많이 고독하고, 자주 슬퍼요”

“누가 내 고통을 알까 싶어요 “

“이 고통을 뭐라고 말해도 아무도 모를 거 같은 고립감이 들어요 “

“이젠 눈물도 오래는 안나고요 “

“제 마음이 소등된 방안 같아요”


“흠…”

“삶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잖아요”

“뭐든 잘 풀릴 때도 있으면 안 풀릴 때도 있고요”

“지금이 환자분 삶에 가장 힘든 고비라고 생각하세요”

“여기서 더는 나빠질 게 없다, 이렇게요 “

“그러니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좋아질 날만 남았으니 다행이잖아요 “


“네에…”(삐질삐질)


“자살 충동은 좀 어떠세요?”


“자살 충동은… 글쎄요! 지쳤다는 감은 있지만 지쳤으니 쉬고 싶다는 감정은 없는 거 같아요”

“근데 통증이 너무 심할 땐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오히려 들어요 “


“그렇군요”

“십 년 후에, 아니 빠르면 오 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면.. 아, 그땐 약도 엄청 많이 먹고 죽고 싶을 만큼 아픈 날도 있었지 할 거예요”

“물론 그때도 병원을 다니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요 “


“어머 선생님 10년 후면 전 병원 안 다니고 있어야죠”


“아~물론 그러면 좋지만,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으니 확정 지을 순 없죠”

“병원 다니면 어때요. 또 일어서면 되죠”


“오메, 전 안 다니고 싶어요 선생님”

“5년 후에도요”


“하하하”

“그건 그때 되면 알겠죠 “

“더 악화는 안 되는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느리지만 분명히 좋아지고 있는 걸 전 느낍니다 “

“헤헤헤“


“그래요. 제가 휴가니깐, 다음엔 이주 전에 좀 일찍 오세요”

“8월 1일에 뵐게요”


“네, 8월 1일에 올게요”

“감사합니다”


우울증도 우울증인데 두통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같은 층에 있는 내과가 편두통도 치료하나 궁금했어요. 신경과가 정말 귀하거든요. 그래서 정신과 약을 처방받으며 물어봤습니다.


“약사님 옆에 내과 편두통약도 처방 하나요?”

“타이레놀 이런 거 말고요, 전문 두통약이요”


“왜 여기 정신과에 말씀하시죠?”


“정신과에서는 진통제 처방 안 한다네요”


“아, 그래요. 여기 내과도 다 처방하죠 “


“네, 감사합니다”



———— > 옆에 내과로 이동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지금 아픈지는 백신 맞고 삼 년째고요. 옆에 정신과 다닌 지는 1년째입니다 “

“지금 우울증으로 이 약을 먹고 있어요 “

“편두통이 너무 심해서 죽을 거 같아요 선생님“

“그전에도 두통이 있긴 했는데요. 지금처럼 363일 23시간씩 아프진 않았거든요 “

“지금은 펜잘도 한 번에 3알씩 먹어야 되고요, 타이레놀도 한 번에 3알씩 먹어야 돼요”


“그러면 안 되는데요”

“이 정도면 편두통 예방약만으론 안 되겠네요 “

“예방약은 3개월 이상 드셔야 하고요”

“진통제도 따로 드릴게요 “

“진통제 먹고도 안 들을 때 또 먹는 아주 센 진통제도 하나 더 드릴 거예요 “


“저 소화도 안되고, 배도 자주 아파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요”


“편두통 환자는 음식 조절을 엄청 많이 해야 해요. 지금 체크하는 음식 다 피하시고 순수 한식으로만 조금씩 많이 씹어 드세요 “


“그리고 자주 오시기 힘드니 다음 정신과 오시는 날 하고 맞춰서 약 드릴게요 “


“저승보단 이승이 났습니다”

“살려는 의지를 가지셔야 해요 “

“아셨죠? 약만으로는 안됩니다 “


“약 복용하시고 내일 상태가 어떤지 병원에 전화 주세요. 환자분 이름만 말씀하시고 상태가 어떤지 간호사한테 알려 주세요. 그리고 저한테 전해 달라고만 하세요”

“제가 환자분이 어떤지 알아야 하니까요 “


그리곤 시크하게 명함을 주셨어요.

어머나 반할 뻔~


“저 이십 대 때도 두통이 심했던 적이 있는데요”


“네, 이제 저한테 오셨으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 환자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


“약이 세 가지 나갈 거예요”

“약이 복잡하니깐 약국에 같이 가실게요. 옆으로 서세요 “

“약사님께 내가 직접 설명할게요”


“이렇게요?”(옆으로 섰습니다)


“하하, 아뇨, 따라오시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약국에 직접 같이 가셔서 약을 이렇게 나눠 주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와~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저한테 오셨으니 제가 알아서 한다는 말씀’

너무 멋지지 않으신가요? 이런 사명감 있으신 선생님 뵌 지 정말 오랜만이네요. 정신과까지 걱정해 주시고요.


“불면증은 내가 안 봐드려도 되나요? “

하고 물어보시는데, 일단 수면제는 정신과에서 받고 있으니 불면증은 지켜보기로 했어요.


전문 편두통 약을 먹으니 지금은 머리와 목은 무겁지만 두통은 없습니다. 진작 전문약을 먹을걸.. 에혀 제가 이리 느리고 답답합니다.


그래도 오늘 완전 10분은 숨 트인 이유가 확실하죠.


움직이고 해결하려 나서니 좋은 결과가 있어서 정말 뿌듯합니다.


하루에 일분씩이라도 좋아요.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매일 늘어만 난다면요.


하루에 딱 1분씩만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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