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멈추고서야 들리기 시작한 내면의 호흡
[작가의 노트] 2025년 11월, 세 번째 하프 마라톤에서 마주한 한계를 넘어서며 기록한 '성장의 증명'입니다.
달리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흘린 땀방울은 근육에 새겨지고, 숨 가빴던 훈련의 시간은 기록이라는 정직한 숫자로 치환된다.
지난 11월 16일, 나는 세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에서 1시간 42분 31초라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숫자가 내게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빨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세 번의 도전 끝에 비로소 '나만의 페이스'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가장 정교한 데이터였다.
첫 번째 하프 마라톤은 처참했다. 의욕만 앞선 채 부족한 근력으로 무모하게 도전했고, 결국 무릎 부상을 입은 채 후반 10km를 거의 울면서 뛰었다.
두 번째 도전 역시 아쉬웠다. 초반의 기세에 취해 오버 페이스를 범했고, 후반부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급격히 무너졌다.
연이은 실패를 복기하며 깨달은 것은 '무작정 열심히'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비즈니스 전략을 짜듯 나의 훈련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AI의 도움을 받아 주간 훈련 계획을 세우고, 인터벌과 롱런을 적절히 배치하며 몸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이번 레이스의 핵심 전략은 '네거티브 스플릿(Negative Split)'이었다. 초반에는 힘을 아끼고 후반부에 스퍼트를 내는 것. 살면서 가장 어렵다는 '완급 조절'을 주로 위에서 연습하기로 한 것이다.
애플워치가 꺼진 뒤에야 비로소 보인 것들
대회 당일,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5km 지점을 지날 무렵, 페이스를 체크하던 애플워치가 방전되어 버린 것이다.
초 단위로 기록을 확인하며 달려야 하는 대회에서 시계의 부재는 눈을 감고 뛰는 것과 다름없는 공포였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시계는 멈췄지만, 내 심장과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기계적인 숫자에 의존하는 대신, 나의 호흡과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지금 이 속도가 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지, 내 안의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설적이게도 시계가 사라지자 나의 '코어'는 더 선명해졌다.
휴대폰으로 간간이 확인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하프 대회 참가 이래 처음으로 후반 5km에서 페이스를 올리는 '웃는 완주'를 경험했다.
1시간 42분 31초. 1시간 45분이라는 목표를 훌쩍 넘어선 결과였다.
기록보다 값진 것은 '나에 대한 확신'이다.
3번의 도전, 6년의 달리기 끝에 얻은 것은 단순한 기록지가 아니다. 부상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 돌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그리고 끝내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용기다.
이제 나는 다음 출발선을 꿈꾼다. 내년에는 42.195km, 풀 마라톤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할 것이다. 21km를 웃으며 완주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확신한다.
어제의 나를 뛰어넘는 성장은 오직 정직한 반복과 나를 믿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준 이 명쾌한 진리를, 이제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증명해 보이고 싶다. 나의 코어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