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적당히'라는 변명을 멈춰야 한다.

by 라고머 리지

30대 후반, 저의 일상은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제 마음을 지배했던 건 거대한 세 가지 두려움이었죠.


'늙는 것', '살찌는 것', 그리고 '돈이 없어지는 것'.


나이가 들면 당연히 활력을 잃고 몸은 망가지며, 회사를 그만두면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가 저를 침대로 밀어 넣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질 시기를 가만히 누워 기다리기만 했던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기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이제 저는 압니다.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나이듦이 결코 무기력과 쇠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정직한 식단과 꾸준한 러닝으로 내 몸을 관리할 때 나이듦은 오히려 농도가 짙어지는 성숙이 됩니다.


경제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이라는 단일 통로를 넘어 수입의 원천을 다변화하려 고군분투하는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저는 늘 변명에 능숙했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위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찜찜함을 가리기 위한 비겁한 정당화였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늘 개운치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적당히 나쁜지 않은 정도'에 안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오롯이 혼자가 된 지금, 저는 제 삶의 '구조적인 틀'을 새로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살피며 인생의 기둥을 세우는 일입니다.


단순히 결과물을 내는 것에 급급하기보다, 내 안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은 나여야 한다".



정말 그런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나 자신과 가장 친밀하게 소통하며,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나를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정의하는 진정한 자기애(自己愛)입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물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사람은 딱 자신의 생각의 크기만큼만 상황을 해석합니다. 지식이 부족하면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성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제 마음의 방을 더 크게 넓히려 합니다.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나라는 사람의 역량을 믿고, 그 가능성에 정직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Why not the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결과가 반드시 1등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내 인생의 정점에서 "나는 나를 위해, 나의 모든 가능성을 쏟아부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 자신과 아주 잘 지내며, 가장 정교한 시스템으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과정. 그 정직한 몰입 끝에 따라오는 성취감을 저는 믿습니다.



21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매일 아침 운동화 끈을 묶으며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묵묵히 다져온 내면의 구조물이라는 것을요.



여러분은 지금 스스로를 위해 어떤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계신가요?

자신을 '적당히'라는 칸막이에 가두지 마세요.


당신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당신을 위해, 오늘 최고의 하루를 설계해 보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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